다만 러시아는 강력 반발하고 있어,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긴장감은 한층 격화할 전망이다. 푸틴 대통령을 재판대에 세울 수 있는 수단이 현실적으로 마땅치 않은 만큼 ‘강대강’ 대치는 지속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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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러 전쟁 범죄’ 첫 성명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2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미국 정부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러시아의 전쟁 범죄 판단을 공식화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푸틴 대통령을 두고 “전범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지만, 성명의 형식을 띠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건 전례가 없다.
미국이 이런 결론을 내린 건 우크라이나 내의 민간인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는 탓이다. 블링컨 장관은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겨냥한 무차별적인 공격과 잔학 행위에 대한 많은 보도를 본다”며 “매일 무고한 민간인 사상자가 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정부는 전쟁 범죄 보도를 계속 추적할 것”이라며 “우리가 수집한 정보를 동맹국, 국제기구와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인권사무소에 따르면 러시아가 공격을 시작한 지난달 24일 이후 현재까지 우크라이나에서 목숨을 잃은 민간인은 977명(어린이 81명 포함)이다. 다친 민간인은 1594명이다. 실제 사상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인권사무소의 추정이다. 예상 밖 전쟁 장기화로 인해 우크라이나를 떠난 피란민 규모는 36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푸틴 “우크라가 전쟁 범죄”
이 때문에 푸틴 대통령을 실제 법정에 세울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실제 ICC는 관련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ICC의 카림 칸 검사장은 CNN에 나와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는 건 명백한 전쟁 범죄”라고 말했다. ICC는 집단 학살, 반인도적 범죄, 침략 범죄, 전쟁 범죄 등을 저지른 개인을 형사 처벌하기 위해 2002년 설립한 첫 상설 국제재판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를 재판대에 세울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크라이나가 2013년 말 ICC의 관할권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다른 경로인 ICJ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ICJ는 ICC와 달리 개인이 아닌 국가간 분쟁에 대한 판결을 하는 곳이다. 문제는 ICJ가 러시아를 유죄로 판결하더라도 그 집행은 유엔 안보리가 맡는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중 하나다. 러시아가 거부하면 통과가 불가능한 구조다.
그럼에도 푸틴 대통령이 전범이라는 걸 국제사회가 인정한다는 상징성은 클 것으로 점쳐진다. 블링컨 장관은 “(러시아군의 민간인 공격은) ‘우크라이나 국민을 피와 눈물로 적시게 했다’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증언처럼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강대강 대치는 불가피해 보인다. 러시아 행정부는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전범 발언 당시 “국교단절(rupture)의 위기로 몰고 갔다”고 맹비난하면서 존 설리번 주러시아 미국 대사를 외무부로 초치했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크림반도 병합 8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러시아군의 군사작전은 돈바스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제노사이드)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친러 성향의 돈바스 지역이 대량학살 위기에 처해, 러시아인을 구하고자 어쩔 수 없이 공격했다는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군이 돈바스에 대규모 포격을 퍼부으며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했다. 서방 진영을 비롯한 전 세계의 인식과 괴리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