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과연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 등록 2019-08-02 오전 6:00:00

    수정 2019-08-02 오전 6:00:00

일본의 무역보복은 소재·부품 분야의 기술력 차이에서 시작됐다. 우리보다 ‘반 세기’나 앞서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아무리 발 벗고 나선다 해도 일본을 따라잡는 데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이라는 얘기다. 일본의 이공계 노벨상 수상자가 무려 20명에 이른다는 사실에서도 그 차이가 드러난다. 우리에게는 아직 요원한 장벽이다.

그 차이가 경제력 전반의 격차로 나타나게 된다. 세계은행(WB)이 발표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우리는 1조 6194억 달러, 일본은 4조 9709억 달러로 집계됐다. 우리가 세계 12위, 일본은 미국과 중국에 이은 3위였다. 무역 마찰이 확대될수록 우리 피해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사정이다. 아베 내각이 국제적인 비난과 자국 기업에 미치는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출 규제에 나선 것이 바로 그런 의도일 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극복해야 하지만 현실은 막막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불매운동을 벌이거나 민족 감정을 발휘하는 차원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일본과의 갈등 관계가 부각될수록 내년 총선에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온 것을 보면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집권층 인식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분쟁의 원인이 된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친일·반일의 이분법 구도로 몰고 가려는 듯한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너는 어느 쪽 편이냐”는 추궁으로 눈치를 살피다가 제풀에 꺾이도록 여론몰이가 이뤄지고 있다. 일제의 강제 침략을 받았던 쓰라린 역사적 배경을 감안한다면 누구라도 답변에 멈칫하기 마련이다. 자칫 ‘토착 왜구’라는 낙인이라도 찍히게 되면 사회적인 따돌림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기존 인식을 벗어난 대법원 판결부터가 논란의 소지를 지닌다. “건국하는 심정으로 판결을 내렸다”는 표현이 그 빌미다. 원로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물론 사법부 내에서도 해당 판결의 문제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일본 정부는 1965년 체결된 협상 기록을 공개하면서까지 공세에 나서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게 일본 입장이다.

당시 협약에 피해자로서의 우리 측 주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견해에도 수긍한다. 그러나 우리 입장이 충분히 담기지 않았다고 해서 협약의 내용을 부정하거나 되돌릴 수는 없다. 지금도 국제사회에서 약육강식에 의한 ‘정글의 질서’가 엄연한 만큼 남을 탓하기보다 우리의 힘이 부족했음을 안타깝게 여겨야 할 것이다. 일본 술책에 넘어가 나라를 통째로 빼앗긴 자체가 세계 정세에 굼뜬 약소국의 한계였고, 비극이었다. 지금도 버젓이 두 눈 뜬 상태에서 영공 침해를 당하는 상황이다. 국제사회에서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정의를 기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일본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는 앞장서면서도 일본을 극복하겠다는 의지에 있어서는 소홀했던 게 문제다. 사회적으로 친일파 청산 노력이 이어져 왔으면서도 과거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은 말뿐이었다. 과거 독도 영유권 분쟁과 교과서 왜곡,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망언 사태가 이어질 때마다 성토의 목소리는 높았으나 결국 흐지부지 끝나곤 했다. 습관성 건망증이었다.

과거를 되갚아 주려면 일본보다 더욱 잘 사는 위치로 올라서야 한다. 기술력을 키우고 경제력을 키워야 한다. 국방력도 더욱 튼튼하게 갖출 필요가 있다. 그것이 진정으로 보복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현실은 일본의 수출규제로 우리 기업들이 난관에 빠진 양상이다.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가 과연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라고. 민족 감정을 내세워 현실적인 방안은 뒷전인 요즘 모습이 걱정스럽기만 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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