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또 역사를 왜곡했다. 어제 일반에 공개된 도쿄 신주쿠의 산업유산정보센터에 자신의 근대 산업화 과정을 잔뜩 자랑했을 뿐 한국인의 강제동원이나 차별, 학대는 없었다고 주장한 것이 그것이다. 산업 유산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하겠다는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짓뭉갠 것으로, 가뜩이나 최악인 한·일 관계에 대형 악재가 또 덮친 셈이다.
이 센터에 들어서면 강제징용 희생자들을 기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유네스코 주재 일본 대사의 5년 전 발언이 전시돼 있다고 한다. 악명 높은 하시마(일명 군함도) 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반대에 부딪치자 일본 스스로 약속한 내용이다. 당시 일본 대사는 “1940년대에 한국인 등이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 노역했다”는 사실도 시인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일본은 과거 잘못에 대한 반성이나 희생자 추모는 철저히 외면했다. 약속했던 희생자 기념관도 배제됐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 4만여명이 징용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군함도는 한국인 강제징용자 122명이 목숨을 잃었을 만큼 작업여건이 가혹했다. 그러나 이 센터에는 자신들의 과거 미화와 함께 “집단 따돌림은 없었고 오히려 귀여움을 받았다”, “모두 같은 일본인이라 차별이나 학대는 없었다”는 등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증언도 버젓이 내걸렸다. 당시 월급봉투와 한·일 청구권협정 등을 전시한 것도 속 보이는 처사다.
일본의 역사 왜곡은 습관적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과해 놓고 돌아서서 딴소리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네스코를 비롯한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을 깼다는 점에서 묵과하기 어렵다. 오죽하면 일본 언론조차 “과거 사실을 덮고 역사 수정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겠는가.
외교부는 어제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강제징용 역사 왜곡을 항의했다지만 그 정도로 그쳐선 곤란하다. 일본 정부에 당당하게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국제사회와 공조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산 등재를 취소시키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기 바란다. 다만 일본의 뻔뻔한 역사 뒤집기에 제동을 거는 국가적 과제에 국내정치 상황이 끼어들어 일을 그르치는 사례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