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철현의 '삐딱 부동산'] 한국감정원 이름 바꿔라

  • 등록 2019-03-25 오전 6:00:00

    수정 2019-05-16 오전 10:08:11

[이데일리 조철현 부동산전문기자] 질문 하나. 한국감정원은 현재 부동산 감정평가 업무를 하고 있을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감정원은 2016년 9월 감정원법 개정으로 감정평가 업무에서 손을 뗐다. 감정평가 전문기관에서 부동산 가격 조사·공시 및 시장 관리기관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감정원은 여전히 ‘감정’(鑑定)이라는 단어를 기관명에 쓰고 있다. 영문 표기도 ‘Korea Appraisal Board’로 Appraisal은 ‘감정평가’로 번역된다. 잘못된 처사다. 바로 잡아야 한다.

무릇 이름은 존재의 본질을 가리켜야 한다. 제대로 된 이름이 붙어져야 사물은 비로소 의미를 얻게 되고, 의미를 얻어야 존재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름은 그래서 중요하다. 개개인의 이름은 물론 기업이나 기관 이름인 사명(社名)도 마찬가지다. 의미를 얻지 못하거나 존재 가치가 떨어진 사명은 정체성을 잃게 되고, 정체성을 잃으면 주체적인 고유 업무를 영위할 수가 없다.

2년 전 감정평가 업무서 손뗐지만 이름은 그대로

논어 자로편(子路篇) 3장. 공자의 제자 자로가 물었다. “선생님은 정치를 한다면 무엇부터 하겠습니까?” 공자는 “반드시 이름(名)을 바로 잡겠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言)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事)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처럼 공자도 바른 용어 사용의 중요성을 이미 설파했다. 굳이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을 꺼내지 않더라도 ‘이름을 바로 잡는 것’(正名)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실체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쓰는 경우가 제법 있다. 한국감정원도 그 중 하나다. 한국감정원은 1969년 감정평가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출범했다. 기관 명칭이 한국감정원으로 정해진 것도 이 때문이리라.

그런데 2016년 9월 한국감정원법이 시행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민간 감정평가사들과 시장을 양분하고 있던 부동산 감정평가 업무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한국감정원은 대신 부동산 가격 공시, 통계 생산, 부동산 정책 지원을 위한 조사·관리기관으로 탈바꿈했다.

국민들은 적잖이 헷갈린다. 한국감정원이 감정평가에서 손을 뗀지 2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감정원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다보니 아직도 감정평가를 하는 기관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사명 바꿔 조직 정체성 바로 세워야

한국감정원에서 감정이란 단어를 빼도 감정원의 유사 감정평가 행위가 근절될 것으로 감정평가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감정원은 금융권에 부동산 시세확인서(가격조사확인서)를 유료로 제공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히 불법 행위다.

불필요한 혼란을 없애고 부동산 조사·통계·공시 전문 공기업으로서 본질적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감정원이라는, 전혀 걸맞지 않은 사명을 손볼 필요가 있다. 한국감정원에게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조직의 정체성을 세우고 그 구성원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늦었지만 감정원 이름 바꾸기가 정명(正名)의 모범 사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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