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가 만났습니다]"삼성 떠나면 日기업 더 아파"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 인터뷰
"불매운동 수혜기업 탄생 주목…사드갈등 당시 日이득"
"하반기 코스피 변동성 탈피…종목장 형성돼 지수 끌어"
  • 등록 2019-08-12 오전 5:10:00

    수정 2019-08-12 오전 7:20:30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대표가 6일 회사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한일 관계가 더 악화하면 한국보다 일본 기업 피해가 더 클 겁니다. 관건은 우리가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입니다. 한·중 사드 갈등 당시 일본이 시장에서 한국을 밀어낸 것처럼요.”

한일 갈등에 미·중간 환율전쟁까지 덮치면서 국내 증시가 폭락장을 이어갔던 지난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는 지금과 같은 위기가 오히려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삼성전자(005930)가 일본 기업과 거래하지 않고서도 현재 수준만큼 실적을 내는 건 가능한 일”이라며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일본 의존을 줄이는 것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日화장품 시세이도 뜬 배경은…”

이 대표는 “(거래를 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일본 기업이 피해를 더 크게 보는 게 현재의 한·일 갈등구조”라며 “피해를 보는 한국 기업은 이번에 일본 의존도를 줄이고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대표가 가까이에서 지켜본 국내 제조업체 한 곳은 일본에 전량 의존하던 수입처를 이번에 다변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처럼 위기는 기회다. 앞서 한·중 사드 갈등에서 배울 게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당시 중국에서 한국산 불매운동이 일었고, 한국 기업 가운데 특히 화장품 기업 타격이 컸다”며 “이 틈을 타고 성장한 기업이 ‘시세이도’”라고 전했다. 일본 화장품 기업 시세이도는 지난해 매출 1조900억엔을 기록했다. 여기에서 중국 매출은 전년 대비 32%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는 이 회사 중국 매출이 증가한 만큼 한국 기업의 현지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본다. 그는 “한국에서 일본 제품을 배제하는 소비가 형성하는 과정에서 좋은 사업 모델을 제시하는 기업이 등장하면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며 “시세이도처럼 약진하는 기업이 탄생하지 말란 법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무턱대고 이런 테마주를 좇는 것은 금물이다. 이 대표는 “불매 운동이 해당 기업의 매출에 얼마큼 영향을 주고, 이로써 손익에 반영이 되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했다.

혹자는 지금을 위기상황이라고 우려하지만 금융위기와 빗댈 정도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당시는 시장의 위기였다면 지금은 정치의 문제라는 생각에서다. 그는 “금융위기 당시는 세계 각국 정부가 공조해서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각자가 자기 할 말을 하고 있어서 문제”라며 “자국 보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로까지 번지고 있는데 미·중 갈등이나 일본의 수출 규제도 이런 현상의 연장”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곧 정치가 발을 빼면 해결될 사안이라는 의미다. 이 대표는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누구도 파국을 바라지 않는다”며 “특히 일본은 경제를 정치에 활용하는 것이라서 명분이 약하다”며 “최악의 선을 넘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지치는 까닭은 “고통의 강도가 센 게 아니라, 고통의 시간이 길어진 탓”이라고 이 대표는 말한다. 그는 “2014년부터 형성된 박스권 지수가 상승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다가 최근 변수를 맞고 급락했다”며 “수출 의존도가 높고 경기에 민감한 반도체, 철강, 자동차 비중이 큰 탓에 타격이 큰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외국인도 국내 증시를 피하고, 국내 투자가도 외국으로 눈을 돌리는 처지”라며 “매력이 있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주식을 살 텐데 돈이 갈 곳을 잃은 상황”이라고 했다.

“하반기 박스권…오를 기업은 오른다”

그래도 믿을 건 주식이라고 설명했다. 정확히는 내재가치를 가진 기업의 주식을 꼽았다. 이 대표는 “심리적으로 모든 악재가 쏟아져 나온 지금이야말로 최악의 장”라며 “주식이 싸다는 것 자체가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모멘텀”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러 투자 자산 가운데 수익이나 가치 측면에서 가장 저평가된 것이 주식”이라며 “특히 유동자산에서 시가총액을 빼서 금액이 남는 기업은 공짜 주식”이라고 말했다.

하반기에는 코스피가 박스권을 다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 대표는 “1900선은 심리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깨지지 않을 것이고, 상승한다고 해도 연초 수준으로 2500선까지 뛰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최고 2100선 아래에서 등락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시 박스권이고, 게다가 상단은 전보다 하락한다는 것이다. 답답해 보이더라도, 변동성이 줄고 시장이 안정되는 측면에서 보면 기회다. 이 대표는 “변동성 장에서는 올라갈 기업도 못 올라가니까 문제”라며 “최근 바이오 업종이 임상 타격을 받으면서 임상에 성공한 기업 주가까지 빠진 것은 비정상”이라고 했다. 이어 “박스권이 형성되면 종목이 살아나고, 지수가 뒤를 쫓아가는 국면이 진행될 것”이라며 “저성장 국면이라도 스스로 힘으로 운명을 결정하는 사업 모델을 가진 기업은 있기 마련”이라고 기대했다.

이렇듯 저성장은 앞으로 투자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힘들지 않았던 때는 없었고, 그때마다 답은 있었다. 이 대표는 이런 시대를 헤쳐나갈 해법으로 행동주의를 언급했다. 저성장 국면에서 성장에 대한 목마름이 강해지기 마련인데, 갈증을 해소하지 못하면 결국 고인 물을 정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특히 현금성 자산에서 총부채를 뺀 금액이 시가총액보다 많은 기업은 풍부한 현금 덕에 변동성 장세를 견딜 체력이 센 편이고, 주주에게 배당할 여지도 커서 매력적”이라며 “순 현금을 시가총액보다 많이 들고 있는 기업이 IMF보다 지금이 더 많기 때문에 배당을 늘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이 있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이채원 대표는…△1964년생 △중앙대 경영학과 △동원증권(1988년) △동원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부장(1996년) △동원증권 주식운용팀장(2000년) △한국투자증권 자산운용본부장(2005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2006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이사(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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