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가 만났습니다]데이터3법 시행령, "잠든 호랑이 만지는 격"①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한국바이오협회 회장) 하소연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시행령, “안하느니만 못해”
'상당한 관련성' '관행으로 예측가능' 대표 독소조항
데이터3법 우려가 현실로...기대했던 업계 큰 실망
  • 등록 2020-04-17 오전 5:30:20

    수정 2020-04-17 오전 10:19:15

[이데일리 류성 기자] 지난달 행정안전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가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자 관련 업계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데이터3법 개정안을 두고 “이런 식으로 개정할 바에는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 하다”며 토로하고 있다.

데이터3법 개정안에 대해 가장 큰 기대를 갖고 있던 대표적인 산업 가운데 하나가 제약·바이오 업계다. 업계는 환자 개개인의 정보를 활용해 신약의 연구개발 등에 활용할 수 있게 데이터3법과 시행령이 전향적으로 개정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특히 제약·바이오업계는 “환자정보의 산업적 활용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데이터3법이 개정되면 익명성이 보장된 환자 정보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게 돼 업계 경쟁력을 퀀텀점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유전체 분석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글로벌 기업 마크로젠(038290)의 서정선 회장을 16일 만났다. 서회장은 한국바이오협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한국 바이오업계의 발전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이다. 서울대 의대 교수로도 재직하고 있다. 대부분 바이오 산업이 그렇지만 유전체 분석 서비스도 환자 개인정보의 효과적 활용이 글로벌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요소로 손꼽힌다.

서 회장은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데이터3법 시행령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기업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개정안 곳곳에 판단하기 애매한 조항들이 들어 있어 기업들이 현장에서 적용하기에는 경영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기업들이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 법령은 “없는 게 더 낫다”고 했다.

서 회장은 데이터3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최악의 독소조항(제14조)으로 “개인정보를 추가적으로 이용하려는 목적이 당초 수집 목적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을 것”이라는 항목과 “개인정보를 수집한 정황과 처리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추가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 가능할 것”이라는 조항을 꼽았다.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한국바이오협회 회장)은 “만일 지금의 데이터3법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기업은 눈가리고 잠든 호랑이를 만지는 것과 같은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영훈 기자
그가 우려하는 대목은 ‘상당한 관련성’과 나중 항목의 ‘처리 관행에 의해 예측 가능’이라는 문구다. 이 두 문구의 애매모호함으로 말미암아 기업들은 자칫하면 법적인 처벌을 면하기 어려운 불확실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 서 회장의 판단이다. 그는 “법령은 누구나 똑같은 판단과 이해를 할 수 있게 명확하게 적시해야 하는데 이번 개정안은 논란의 여지가 넘쳐나는 조항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면서 “아무리 익명성이 보장된 개인정보라도 나중에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두고 법적 다툼의 소지가 있으면 기업은 아예 그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이 시행령 개정안은 5월 11일까지 입법예고 예정이다. 이후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면 오는 8월5일 공포·시행될 예정이다. 서 회장은 “만일 지금의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기업은 눈 가리고 잠든 호랑이를 만지는 것과 같은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유전체 분석 분야 등을 포함한 제약·바이오 업계가 가장 원하는 형태의 데이터3법 시행령은 뭔가.

△현재 데이터3법에 대한 정부·기관 및 민간단체의 입장은 이해한다. 개인정보는 항상 지켜져야 하는 부분이다. 업계는 무엇보다 소중한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 된다는 점을 깊게 인식하고 있다. 개인정보에 대한 개인의 자유권 또한 보장해 줘야 한다. 기업의 기본적인 목적은 이윤 창출이지만, 세계를 선도하고자 하는 기업은 그만큼 윤리적 책임도 통감하고 있다. 데이터의 주체가 되는 개인들과 함께 협의를 해나간다면 기업들의 자유로우면서도 책임감 있는 개인정보 보호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확실하게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도 산업의 발전을 위해 익명성이 보장된 개인정보는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3법 시행령이 개정되어야 한다.

-미국, 유럽, 일본 등 해외 선진국은 개인정보를 어느 정도 산업에 활용하고 있는 상황인가.

△해외 주요국들은 데이터 경제시대의 주역이 되기 위해 개인정보의 산업적 활용과 관련한 법·제도 혁신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은 각 주 단위로 산업별로 관련 법을 제정해 기업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개인정보 공개원칙을 정립해 세계 굴지의 IT 기업인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이 개인정보를 적극 산업에 활용토록 권장하고 있다. 대부분 기업들이 이용자의 사전 동의를 받지 않더라도 개인정보를 수집, 분석, 활용할 수 있다. 다만 무분별한 개인 정보수집을 방지하기 위해 사후 거부제(opt-out)를 활용, 이용자가 정보 제공을 거부할 수 있도록 보완장치를 두고 있다.

유럽연합은 지난 2018년 개인정보보호법(GDPR)을 전면 시행, 글로벌 빅테크(Big Tech) 기업들의 데이터 활용체계 정비를 이끌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자율주행 및 커넥티드 차량의 운용을 위해 관련 개인정보를 산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15년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통해 일찍이 ‘익명가공정보’ 개념을 도입했다. 독립적 개인정보 관리·감독기구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유럽연합의 개인정보보호법 규정에 따른 적정성 평가를 마무리한 후 자칭 ‘세계 최대의 데이터 안전지대’를 구축했다.

-익명성이 보장된 환자정보를 산업에 적극 활용 할수있게 된다면 제약,바이오 업계는 어떤 효과를 거둘 수 있는가.

△현재 제약, 바이오 업계는 환자 또는 건강한 사람의 정보를 보유하고 있지만 데이터가 파편화되어 있고 무엇보다 데이터 활용에 대한 개별적 동의가 필요해 활용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게 허용된다면 무엇보다 개인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개인 맞춤형 의료 서비스가 더욱 활발하고 유용하게 제공될 수 있다. 일례로 DTC(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자 검사) 서비스의 경우 개인의 유전적 특징과 일상에서의 건강정보를 결합해 운동, 식이요법부터 일상 건강을 모니터링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유전체분석 산업의 미래는 어떻게 진화해 나갈 것으로 보는가.

△4차 산업혁명을 통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별 맞춤 치료와 예방 치료를 제공하는 정밀의학으로 발전할 것이다. 인간 유전체 분석을 통해 개인의 유전체 정보와 병원 기록 등 보건의료 빅데이터에 인공지능(AI) 등 기술을 결합하면, 정확한 질병 스크리닝(진단되지 않은 질병의 존재 가능성 확인)이 가능해진다. 여기에 개인별로 적합한 약물과 용량 선택이 가능해진다. 종합적으로 국가 전체 의료비용을 10분의 1 수준으로 절감해 국민건강보험료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서정선 회장은...

△서울대 의대 학사·석사· 박사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원 △대한생화학분자생물학회 회장 △한국생화학분자생물학회 회장 △한국유전체학회 회장 △서울대 의대 교수(현) △마크로젠 회장(현) △한국바이오협회 회장(현) △서울대 의과대 유전체의약연구소 소장(현)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은 “미국,유럽등은 개인정보의 산업적 활용을 적극 권장하며 4차산업을 주도해 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규제에 발목이 잡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이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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