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도, 출처도 밝히지 않고 단 한 줄의 카피로 대체된 광고. 2014년 ‘배달의민족’ 광고는 충격적이었다. 단지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물음 하나로 배달 전문 플랫폼 배달의민족을 알리고, 우리 자본으로 만들어진 우리 민족의 회사라는 동질감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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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신드롬이 된 배달의민족 광고를 제작한 곳은 LG 계열의 종합광고대행사 HS애드다. HS애드는 배달의민족 광고 외에도 수많은 히트 광고를 만들어 내 업계에서 입지를 굳힌 유명 광고대행사다.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란 대사로 유명한 대한항공 광고, ‘쓱’이란 단어를 널리 알린 SSG닷컴 광고도 HS애드의 작품이다.
배달의민족이 이 광고로 얻은 바도 크다. 이 광고 이후로 소비자들은 독일계 자본인 딜리버리히어로(DH)가 운영하는 요기요보다는 배달의민족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요기요가 배달통을 인수하면서 독일 자본 침투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지며 배달의민족에 대한 소비자들의 지지도는 더욱 높아졌다. 기세를 탄 배달의민족은 HS애드와 손잡고 “OOO도 우리 민족이었어”라는 문구로 애국 마케팅을 진행해 지속적인 이슈몰이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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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만 하더라도 배달의민족을 정상으로 끌어올린 이 광고가 족쇄가 돼 돌아올 거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지난해 12월 13일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은 요기요 운영사인 독일의 딜리버리히어로(DH)에 매각됐다. HS애드의 광고로 우리 민족, 우리 자본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했던 배달의민족이 독일 회사에 팔리자 소비자들은 큰 실망과 배신감을 느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알고보니 ‘배신의 민족’, ‘배다른 민족’, ‘게르만 민족’이었다며 비아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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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민족이 매각되면 국내 배달 앱 시장은 DH가 사실상 100% 독점한다. 이에 따라 배달수수료 상승 등 본격적인 독과점의 폐해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실제로 최근 요기요는 일부 프랜차이즈를 대상으로 수수료율을 인상해 비판받은 바 있다. 요기요 측은 “프로모션 종료에 따른 수수료율 정상화 과정으로 부당한 인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지만 소비자와 소상공인의 불만이 지속적으로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 벤처캐피털(VC) 업계 관계자는 “사실 배달의민족의 경우 힐하우스캐피탈이나 세콰이어캐피탈 등 해외로부터 자본을 유치한 시점에서 국내 자본만을 바탕으로 성장한 기업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이는 국내 유니콘 스타트업들 대부분도 비슷한 실정”이라며 “다만 애국 마케팅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바람에 그만큼 반동이 큰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