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당구장 겐빼이의 재미' 되살린 프로당구 PBA 팀리그

  • 등록 2020-09-16 오후 5:51:22

    수정 2020-09-16 오후 7:35:23

프로당구 PBA 웰컴저축은행 소속의 프레드릭 쿠드롱(왼쪽))과 차유람이 혼합복식 경기 중 서로 작전을 상의하고 있다. 사진=PBA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동네 당구장에서 여러 명이 모였을 때 편을 먹고 시합하는 것을 ‘겐빼이’라고 불렀다. ‘겐빼이’라는 용어의 어원은 일본 역사와 관련이 있다. 11~12세기 일본의 미나모토(源) 가문과 타이라(平) 가문이 치열하게 싸움을 벌였는데 이를 ‘겐페이노 갓센’(源平の合)이라 불렀다.

이후 ‘겐빼이’는 편 가르기를 뜻하는 말로 한국에 넘어왔고 당구용어로 널리 사용됐다. 물론 정식 경기에선 일본식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겐빼이’라는 용어는 복식경기 또는 팀 경기로 불린다.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소노캄 고양 호텔에서 열린 ‘신한금융투자 PBA 팀리그 2020~21’ 1라운드가 막을 내렸다. 1라운드 결과 신한금융투자와 웰컴저축은행이 공동 1위에 올랐다.

당구는 대표적인 개인 스포츠다. 물론 이벤트 경기 방식으로 복식 경기가 간간이 열리기도 하지만 중요한 대회는 철저히 개인전으로 치러진다. 심지어 남녀 선수 6~7명이 한 팀으로 뭉쳐 단체전을 벌인다는 것은 그전까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지난해 출범한 프로당구 PBA는 올해 팀리그라는 새로운 발상을 내놓았다. 기존 PBA 후원사들을 바탕으로 6개 팀을 만들었다. 각 팀에는 PBA에서 활약 중인 6~7명의 남녀 정상급 선수들이 포함됐다.

그전까지 팀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던 선수들은 처음에 낯설어했다. 어떻게 경기를 운영하고 전략을 짜야 할지 몰랐다. 그전까지 인연이 별로 없었던 선수들끼리 팀으로 뭉치다 보니 다소 어색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이동에 제약을 받다 보니 함께 훈련할 시간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팀리그는 기대 이상이었다. 기존의 당구 경기에선 느낄 수 없었던 재미와 볼거리가 쏟아졌다. 선수들은 포인트를 따내고 세트를 따낼 때마다 같은 유니폼을 입은 팀원들과 함께 환호하고 기뻐했다. 팀원들은 자신의 경기가 아니어도 뒤에서 동료를 위해 열렬히 응원전을 펼쳤다. 심지어 피켓, 나팔, 북 등 응원도구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특히 팀리그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겐빼이’라 불리는 복식경기였다. 팀리그는 총 6세트로 치러진다. 그 가운데는 남남 복식과 혼성 복식도 포함돼 있다. 철저히 혼자였던 선수들이 자신이 칠 공을 앞에 두고 서로 상의하고 작전을 짜는 모습이 나타났다. 과거 당구장에서 쳤던 ‘겐빼이의 추억’이 프로당구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팀리그를 접한 선수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팀리그 1라운드에서 남녀 통틀어 최고 승률(7승 3패)를 기록한 ‘당구여제’ 김가영(신한금융그룹)은 “경기 중 큰 소리로 동료를 응원할 수 있다 보니 당구가 더 밝아진 것 같다”며 “팀리그를 통해 너무 조용하고 진지했던 당구가 더 밝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웰컴저축은행 소속으로 활약한 ‘당구요정’ 차유람은 주장으로 팀을 이끌었던 ‘3쿠션 4대 천왕’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쿠드롱의 존재만으로도 팀원들이 힘을 얻고 발전할 수 있었다”며 “팀원들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새롭고 설레는 경험이다”고 소감을 전했다.

웰컴저축은행 리더 쿠드롱은 “이기든 지든 우리는 한 팀이다”며 “지는 것은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팀으로 지는 것이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팀리그의 의미를 소개했다.

물론 자신이 못하면 팀 전체의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부담까지도 팀원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선수들은 오히려 더 반가워한다. TS·JDX 팀 이미래는 “팀원이 생겼다는 자체로 굉장한 시너지를 얻었다”며 “외롭지 않은 느낌이 좋았고 긴장을 덜어줄 수 있는 팀원이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PBA 팀리그 시작 전 해외에서는 우려의 시각도 많았다. 이러한 우려는 대회가 진행되고 경기 방식이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네덜란드 당구 칼럼니스트 버트 벌추이치슨은 “PBA 팀리그는 매력적이다”며 “팬이 아닌 사람들도 팀리그라는 새로운 포맷이 보는 팬들에게 무척이나 매력적이란 것을 인정해야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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