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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단의 책임감이 더해지니 넥센의 자율훈련은 올시즌 효과를 톡톡히 봤다. 넥센은 지난 해와 달리 후반기들어서도 좀처럼 지치지 않는 모습으로 4강 진출 티켓을 따냈다.
그런데 투수조의 중고참 손승락은 한 번도 자율훈련일에 여유를 부려본 적이 없다. 더 큰 책임감에서다. 그가 치열한 순위다툼을 벌이는 동안 세이브 숫자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 ‘맏형’으로서 역할이 더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3일 문학구장에서 만난 손승락도 그랬다. 바로 전날(2일) 마산 NC전을 치르고 새벽 늦게 인천에 도착한 넥센 선수단. 3일 SK전을 치르면 또 바로 광주로 내려가야하는 고된 일정이었다. 그래서 3일은 자율훈련일이었다. 피로가 쌓인 박병호, 강정호, 서건창, 김민성, 허도환, 한현희 등 주축 선수들은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인 오후 4시께 문학구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불펜진의 고참급인 손승락은 기존 선수들과 함께 일찍 나와 훈련을 했다. 마무리는 다른 불펜진보다 육체적, 정신적 피로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보직. 전날도 세이브를 올리고 피곤할 법한 상황이다. 아니 피곤하지 않을리 없다.
한 번쯤은 조금 더 쉬고 천천히 나오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에겐 해야할 일이 많았다. 일찍 나와 선후배도 챙기고 형으로서의 역할도 해야하고, 때론 중고참으로 조율할 일도 생기기 때문이다. 굳이 할 일이 없더라도 고참이 유쾌한 농담으로 함께 훈련하며 자리를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에겐 든든할 때가 많다. 형으로서의 책임감이 든 것이다.
자율훈련일을 맞아 투수진의 막내 한현희가 늦게 출근한 것도 그렇다. 타팀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느 조직이든 막내가 가장 먼저 출근해야한다는 것은 의무이자 예의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선후배 중간자로서의 역할. 마무리 손승락은 마운드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훈련 중 더그아웃, 라커룸에서 더 많은, 더 큰 일을 하고 있는듯 했다. 타팀의 후배들까지 잘 따르는 손승락의 책임감과 리더십이 충분이 느껴진 대목이기도 했다.
그런 손승락은 4일 경기를 위해 선수단에 앞서 먼저 광주로 이동하는 후배 오재영과 문성현이 인사를 하자 당부의 말을 전한다. “생고기는 먹지 마라.” 자칫 더 중요한 게임을 앞두고 시즌 막판 조리하지 않은 음식을 먹고 건강에 탈이 나진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 가득한 손승락이었다. 경상도 사투리가 무뚝뚝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그 속에 담긴 세심함, 자상함, 따뜻함을 후배들도 모를리 없었다.
손승락은 올시즌 기록한 45세이브, 그리고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기록만큼이나 더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2013시즌 탈없이 잘나가는 넥센 마운드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