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 열풍으로 K소리 주목…K콘텐츠가 또 해냈다[女국극 재조명]

'정년이' 6회 만에 시청률 13% 돌파·화제성 1위
드라마 인기로 해외 시청자·외신 '국악'에 관심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도 웃음꽃
"'정년이' 여성국극 매력 잘 담아, 드라마 통해 부활했으면"
  • 등록 2024-11-01 오전 6:00:00

    수정 2024-11-01 오전 6:00:00

‘정년이’ 포스터(사진=tvN)
[이데일리 스타in 김가영 기자] “‘정년이’를 보고 국극 무대에 반해 판소리 영상을 찾아보고 있어요.”

tvN 드라마 ‘정년이’가 인기리에 방영되면서, K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애플TV+ ‘파친코’, 영화 ‘미나리’가 한국 이주민들의 이야기로 세계를 감동시키고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 한국의 게임을 세계에 전파했다면 ‘정년이’는 K팝의 원조인 우리의 소리, 우리 예술의 가치를 알리며 콘텐츠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정년이’는 여성국극에 대한 고증을 많이 한 원작이 있고 여기에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재미, 국악이 어떻게 하면 더 멋있게 보일지 고민한 장영규 음악감독의 흔적들이 담겨있다”며 “좋은 작품은 잘 보이지 않았던 가치를 끄집어주는 면이 있는데, ‘정년이’는 국악에 대한 매력을 확실히 끌어내고 있다. 해외에서도 충분히 관심을 가질 수 있고 이것이 촉발점이 돼 한국 국악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잘 만든 콘텐츠의 힘

동명의 네이버웹툰을 원작(글·그림 서이레·나몬)으로 하는 ‘정년이’는 여성국극(1950년대 한국 전쟁을 전후로 큰 대중적 인기를 모은 창극의 한 갈래로서 모든 배역을 전원 여자가 맡는다)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다뤘다. 주인공 ‘정년이’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극단 스타가 되어가는 여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내며 인기몰이 중이다. 6회 만에 전국 가구 평균 13.4%, 최고 14.9% 시청률을 기록했고 ‘한국인이 선호하는 프로그램’ 드라마 부문 1위(한국갤럽), 3주 연속 TV-OTT 화제성 조사 1위(굿데이터코퍼레이션)를 차지하며 ‘정년이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기의 중심에는 배우들이 있다. 영화 ‘아가씨’,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 SBS ‘악귀’ 등 다수 작품을 통해 탄탄한 연기를 보여준 김태리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 윤정년 역을 맡아 성장기를 그려내고 있다. 연기는 물론, 3년간 소리를 배워 직접 소리 연기를 소화하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김태리뿐만 아니라 신예은(허영서 역), 정은채(문옥경 역) 등도 국극 연기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이 연기한 국극 무대 영상만 따로 편집돼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될 정도다. 국악 관계자들은 앞서 공개된 국악 소재의 작품보다 배우들의 소리가 더 완성도 높다고 극찬하고 있다. 여기에 소리·연기·무술·악기 등 다양한 요소를 결합한 국극의 매력을 잘 담아내고 극적인 서사까지 더해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였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최대 규모 콘텐츠 평점 사이트 IMDb에서 에피소드별 평균 9.4라는 높은 평점(10점 만점)을 기록하며 글로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정년이’를 접한 해외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시대에 살고 싶어진다”, “시대와 배경을 모르는 다른 문화권의 사람에게도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힘” 등 드라마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다뤄진 우리의 역사, 소리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외신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싱가포르 매체 더 스트레이츠 타임즈는 김태리의 연기와 자매·사제·경쟁자 등 인물들의 관계성을 조명하며,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정년이’를 높이 평가했다. 인도 매체 발리우드 헝가마는 “버티고 이겨내는 한국인들의 전통적인 정신에 대한 경의를 느끼게 하고 매력적인 스토리라인과 모두의 공통 정서인 유대감과 소속감을 느끼게 한다”고 호평했다.

‘정년이’ 스틸컷(사진=tvN)
◇경제효과에 국악계 붐까지


‘정년이’의 인기는 방송가를 넘어 경제, 전통문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롯데웰푸드는 ‘정년이’와 협업한 찐빵 신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극 중 등장한 정년이가 찐빵을 먹는 모습이 화제가 되며 협업이 이뤄졌다.

제작사인 스튜디오드래곤도 웃음을 되찾았다. 앞서 증권사들은 스튜디오드래곤의 3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를 밑돌 것으로 분석한바 있다. 하지만 ‘정년이’ 등 신작이 호평을 얻으며 증권사들의 전망을 뒤엎었다. 김회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정년이’의 4회 시청률이 12.7%로, 스튜디오드래곤 제작-tvN 방영 드라마 중 ‘눈물의 여왕’(4회 13%)에 이어 역대 2위 시청률을 나타냈다”며 “화제작들은 방영 중 또는 종영 후 스페셜 회차를 편성해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는데 ‘정년이’ 역시 스페셜 편성 등을 통해 광고 수익 극대화가 이뤄지지 않을까”라고 전망했다. 스튜디오드래곤 제작 tvN 주요 드라마의 평균 시청률은 21년 9.2% 정점 후 22년 8.3%, 23년 6%까지 하락했는데 올해는 ‘눈물의 여왕’에 이어 ‘정년이’까지 흥행하면서 10월 기준 8.3%까지 회복했다. ‘정년이’ 방영 전 3만원대를 유지하던 스튜디오드래곤 주가도 ‘정년이’ 흥행 이후 4만 원대까지 회복하는 등 반등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정년이’ 열풍으로 국악계에도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여성국극은 1950년대, 현시대로 비유하면 ‘아이돌급’의 인기를 끌었으나 60년대에 접어들며 영화·TV 등 대중문화가 보급되고 남녀 혼성 창극단인 국립국극단이 탄생한 이후 소외되고 배제됐다. ‘정년이’를 통해 잊힌 여성국극의 역사와 매력이 조명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드라마를 통해 여성국극뿐만 아니라 국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러 전통 공연이 같이 주목을 받고 있다. 박애리, 남상일이 출연하는 ‘더 판: 상엿소리와 난장판의 경계에서’는 예매율이 급증했으며, 업계에서는 새로운 공연 제작에 대한 논의도 나오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정년이’를 통해 국악에 관심을 갖게 돼 공연을 보고 왔다는 드라마 팬들의 인증도 이어지고 있다.

유영대 전북도립국악원 원장은 “창극(국극)은 뮤지컬, 오페라처럼 관람하면 웅장하고 멋있지만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보러 오기까지가 어렵다”며 “‘정년이’ 흥행으로 이같은 편견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국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성 국극을 만들어달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며 “‘정년이’의 흥행으로 국악계가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 판소리의 재발견”이라고 말했다.

송지원 음악인문연구소장은 “영화 ‘서편제’가 인기를 끌며 판소리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급증했다”라며 “‘정년이’가 계속 좋은 반응을 이끈다면 판소리나 국극에 대한 관심도 더 커질 것이라 본다”고 전했다.

윤중강 국악평론가는 ‘정년이’에 대해 “여성국극에 대한 사전 공부도 많이 했고 여성국극의 본질을 잘 알고 제작을 한 드라마”라며 “우리 여성국극은 단순히 노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 춤, 검술, 연기 등을 두루두루 아우르는데 그걸 잘 알려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년이’가 잊혔던 여성국극에 대한 관심을 두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며 “여성국극이라는 매력적인 장르가 드라마를 통해 부활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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