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남자배구 간판스타 정지석(29·대한항공)은 최근 몇 달 동안 동료들과 다른 색의 유니폼을 입었다. 바로 리베로를 맡았기 때문이다.
정지석은 4년 연속 통합우승을 이룬 대한항공의 간판스타이자 국가대표팀에서도 주공격수를 맡고 있다. 공수를 겸비한 명실상부 육각형 선수이자 현재 남자 배구를 대표하는 최고 선수다
그런 정지석이 정규리그 개막을 앞두고 지난 9월에 열린 KOVO컵부터 리베로를 맡았다. 정강이 피로골절 부상 여파로 정상적인 공격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토미 틸리카이넨 대한항공 감독은 정지석이 몸 상태를 회복하면서 코트 감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깜짝 선택을 했다. 리베로로 그를 기용한 것. 심지어 V리그 개막 후 4경기까지도 리베로 유니폼을 입었다.
수비력만 놓고 보면 정지석은 전문 리베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V리그에서 가장 안정적인 서브리시브를 자랑한다. 수비력도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수비와 리시브만 맡기기에 정지석은 공격을 너무 잘한다.
정지석이 원래 포지션으로 돌아가면서 대한항공은 송민근과 강승일이 리베로를 나눠 맡았다. 송민근은 2000년생, 강승일은 2005년생의 어린 선수들이다. 15년차 베테랑 정성민이 실질적 주전이지만 몸상태가 좋지 않아 이날 KB손해보험전에 결장했다.
잠시 리베로를 경험한 뒤 돌아온 정지석은 가장 먼저 후배 리베로들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그는 “리베로로 출전한다는게 처음에는 신났는데 나중에는 후배들에게 너무 미안했다”며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아울러 “내가 특별히 리베로 기술이 특별하거나 뛰어난 것은 아니다”면서도 “그래도 더 많은 경기를 뛰었기 때문에 (코칭스태프 입장에서) 후배들이 내가 하는 걸 보면서 배웠으면 하는 게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리베로는 기량이 월등하지 않다면 멘털이 중요한 자리인 것 같다. 정말 힘든 자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 선수들은 어떻게 버텼을까 싶다”며 “어택 라인 안에서 리시브를 하지 못하다 보니까 실수가 많았다. 리베로 만의 룰이 많이 낯설었다”고 인정했다.
본업으로 돌아온 정지석은 한결 표정이 밝았다. 하지만 팀 사정상 책임감과 부담감도 크다. 당분간 외국인선수 없이 국내 선수로만 경기를 치러야 할지 모른다, 정지석이 사실상 외국인선수 같은 역할을 해줘야 한다.
정지석은 “사실 지난해부터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 특별하게 생각하진 않는다”며 “우리 팀에는 정한용이라는 걸출한 선수가 있다”고 자신의 뒤를 잇는 든든한 후배를 치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