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밴드 '너클볼 魔球'에 타자들 방망이 '헛손질'

  • 등록 2017-04-18 오전 6:00:00

    수정 2017-04-18 오전 6:00:00

너클볼 그립을 잡고 공을 던지는 kt 외국인투수 라이언 피어밴드. 사진=kt wiz 구단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2017 KBO리그 초반 ‘너클볼 열풍’이 불고 있다. 주인공은 kt wiz의 외국인 투수 라이언 피어밴드(32)다.

피어밴드는 한국 무대에서 올해가 세 번째 시즌이다. 평범한 투수였던 지난 두 시즌과 달리 이번 시즌은 전혀 다른 선수가 됐다. 올 시즌 3경기에 선발로 나서 3승 무패 평균자책점 0.36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첫 등판이었던 2일 SK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첫 승을 거둘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은 그냥 하루 잘 긁힌 날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9일 삼성전 9이닝 4피안타 무실점 완봉승을 거둔 데 이어 15일 LG전에서도 9이닝 7피안타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자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피어밴드는 리그를 지배하는 에이스이자 각 팀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 중심에는 새로운 주무기 ‘너클볼’이 자리하고 있다.

피어밴드는 지난해부터 너클볼을 던졌다. 하지만 구사 비율은 3.66%에 불과했다. kt에서 11경기에 나와 던진 1176개 투구 수 가운데 너클볼은 겨우 43개였다.

하지만 올 시즌 너클볼 구사비율이 크게 늘어났다. 3차례 선발 등판에서 던진 283개의 공 가운데 너클볼은 82개나 된다. 거의 30%에 육박한다. 직구 숫자와 비슷하다.

피어밴드는 선수 출신인 아버지로부터 고등학교 시절 너클볼을 배웠다. 어디로 휠지 모르지만 제대로 들어가면 타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미국에서 야구를 할 때도 실전에서 너클볼을 마음껏 던질 수 없었다. 제구가 어려운 것도 있지만 이를 받아줄 수 있는 포수가 없었다.

한국에 와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선 직구와 체인지업 위주로 타자와 승부했다. 그런데 올 시즌 포수 장성우(27)를 만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장성우는 사생활 문제로 지난 시즌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가 간신히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포수로서 기량만큼은 리그 정상급이다. 무엇보다 과거 롯데 시절 크리스 옥스프링의 너클볼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다.

장성우는 고질적인 허리 통증으로 풀타임 출전이 어렵다. 하지만 피어밴드가 선발로 나올 때면 빠지지 않고 선발 포수로 마스크를 쓰고 있다. 제멋대로 휘어 들어가는 너클볼을 거의 완벽하게 잡아내고 있다. 또 다른 포수 이해창(30) 역시 너클볼을 받는데 큰 문제가 없다.

피어밴드는 “지난 시즌이 끝난 뒤 너클볼을 연마하는데 더욱 힘썼다. 스프링캠프에서 장성우, 이해창과 계속 호흡을 맞췄다. 두 포수 덕분에 이젠 너클볼을 던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피어밴드는 상대 팀이 너클볼을 대비하고 나오자 오히려 역이용하는 영리함까지 보이고 있다. 첫 두 경기에서 너클볼을 직구보다 더 많이 던졌지만 지난 15일 LG전에선 너클볼 비중(투구수 96개, 너클볼 18개)을 줄이며 허를 찔렀다. 포털사이트에서 국내 기사를 직접 검색해 번역하면서 노력한 결과였다.

물론 오로지 너클볼 덕만 보는 것은 아니다. 피어밴드는 기본적으로 제구력이 좋고 좌우 코너를 잘 활용하는 투수다. 마침 올 시즌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진 것은 피어밴드에게 최고의 선물이 됐다. 직구 구속마저 2~3km 정도 늘어나다 보니 타자들에게 더욱 난공불락으로 다가오고 있다.

피어밴드 역시 “너클볼 때문에 유리해진 면도 있다. 하지만 나머지 구종도 제구가 좋아지고 스피드도 더 빨라져 더 쉽게 경기를 풀어갈 수 있다”며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져 타자들이 적극적으로 반응한 덕도 봤다”고 설명했다.

김진욱 kt 감독도 피어밴드의 활약에 200%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다. 김진욱 감독은 “너클볼이 실전에서 얼마나 효과 있을지 의문점이 들었는데 직접 확인하니 확실한 무기가 됐다”며 “피어밴드가 어느 정도 해 줄 것이라 기대했다. 스프링캠프에서 몸 상태가 확연히 좋았는데 앞으로 구위가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칭찬했다

▲‘마구’ 너클볼이란?

너클볼은 손가락을 구부린 채 스냅을 전혀 주지 않고 밀어서 던지는 공이다. 공의 회전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손가락 관절(knuckle)을 구부린 채 공을 쥔다고 해서 ‘너클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야구공은 기본적으로 완전한 원형이 아니다. 실밥 때문에 표면이 불규칙하다. 회전을 주지 않고 던지게 되면 불규칙한 표면이 공기 저항과 부딪혀 마치 공이 춤을 추는 것처럼 팔랑거리며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마구’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너클볼이 제대로 구사되면 공이 어디로 얼마나 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타자들의 방망이가 헛돌기 일쑤다. 물론 포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너클볼러가 등판하는 경기는 유독 포수가 공을 뒤로 빠뜨리는 경우가 많다.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도 너클볼에 대해선 “난 그걸 제대로 쳐본 적이 없다”며 “최대한 방망이를 짧게 쥐고 오직 맞히는 데만 주력하라. 그 공을 당겨쳐서 장타를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너클볼을 약점이 많은 공이다. 공에 조금이라도 회전이 걸리면 배팅볼로 전락한다. 타자들의 홈런 먹잇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워낙 어디로 들어갈지 알 수 없다 보니 제구가 쉽지 않다. 너클볼 투수가 대체로 볼넷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뛰어난 너클볼 투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대표적인 너클볼 투수로는 필 니크로(통산 318승), 찰리 허프(통산 216승), 팀 웨이크필드(통산 200승) 등이 있다.

오늘날에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노장투수 R.A. 디키(42)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스티븐 라이트(33)가 너클볼 투수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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