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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정철우 기자]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말이 있다. 이별이 아름다운 건 매우 힘든 일이다. 누군가와 헤어져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씩 아름답게 이별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눈에선 한 없이 눈물이 흐르지만 가슴 속에선 큰 울림이 생길 때가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터미네이터2의 엔딩이 그랬다. 스스로 용광로로 조금씩 빠져들어가는 터미네이터를 보며 많이도 울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펄펄 끓는 쇳물 위로 남아 있던 터미네이터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드는 순간, 슬픔은 아름답게 가슴 속으로 퍼져나갔다.
19일. 우리는 또 한번의 아름다운 이별을 경험했다. 한국 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역사 양준혁의 마지막 경기가 그랬다.
하늘의 선물 같았던 은퇴경기였다. 양준혁의 상대는 정규시즌 우승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던 SK였다. 게다가 선발은 한국 최고 투수인 김광현이었다.
김광현과 양준혁은 또 다른 인연이 있었다. 2007년 김광현은 ‘제2의 류현진’으로 불리며 세상의 많은 관심을 받으며 프로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출발은 기대 이하였다. 데뷔전부터 뭇매를 맞았다.
그 중심엔 양준혁이 있었다. 양준혁은 김광현의 데뷔전서 홈런을 때려내며 프로의 매운 맛을 보여준 고참 선수였다.
하지만 누구도 양준혁을 패자라 말할 수 없었다. 부족한 실전 감각을 만회하려 필사의 노력을 하는 그의 모습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마지막 타석. 양준혁은 이번엔 막강 불펜 송은범을 상대해야 했다. 역시 쉽지 않은 승부였다. 볼 카운트 0-2. 양준혁은 3구째를 노려쳤다. 하지만 힘에서 밀린 타구는 평범하게 2루수 앞으로 향했다.
여기까진 아쉬움 뿐이었다. 이것이 끝이라는 생각은 보는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러나 슬픔은 거기까지였다. 늘 보던 양준혁의 모습이 다시 눈 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양준혁은 2루 땅볼이 된 걸 알면서도 전력으로 1루를 향해 내달렸다. 전성기에 비해선 뛰는 속도가 느려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질주 속에 담긴 야구에 대한 간절함과 절실함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양준혁은 도루를 제외한 전 부문에 걸쳐 최고의 기록을 갖고 있는 선수다. 하지만 그는 은퇴를 결심한 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1루까지 죽어라고 전력질주했던 선수”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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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혁에게 전력질주는 야구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었다. 야구를 처음 시작한 순간부터 그 마음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초심 그대로 야구를 했다.
하지만 천천히 그라운드를 도는 양준혁의 마지막 모습은 아픈 슬픔으로 기억됐을 것 같다. 대신 그는 전력 질주를 했다.
양준혁의 은퇴 경기는 슬프지만 아프지 않았다. 매우 양준혁 답게, 정말 양준혁 스러운 엔딩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야구의 전설을 떠나 보내야 한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아직 더 뛸 수 있다는 믿음이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양준혁은 마지막 전력질주를 통해 우리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의 엔딩은 모든 이들에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전력질주했던 선수’라는 기억을 또렷이 남겨줬다. 그가 바라던 그 모습대로 끝을 맺은 것이다.
양준혁의 은퇴 경기가 끝나자 하늘에선 비가 내렸다. 그 비는 양준혁의 뒷모습을 더욱 찬란하게 빛나게한 최고의 배경이었다. 아마도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을 다한 이에게 하늘이 보낸 선물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