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도 어려워진 韓 영화 위기, OTT가 바꾼 극장 생태계

[넷플릭스와 OTT의 역설-K콘텐츠 진단]②
  • 등록 2023-05-08 오전 6:00:00

    수정 2023-05-08 오전 6:00:00

(왼쪽부터 시계방향)지난해 11월 이후 유일하게 손익분기점을 넘은 극장 영화 ‘올빼미’와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 넷플릭스 영화 ‘정이’, 올해 유일하게 100만 관객을 넘은 극장 영화 ‘교섭’ 포스터.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최근 한국 영화들의 개봉 성적은 처참한 수준이다. 지난해 11월 개봉작인 ‘올빼미’를 제외하고는 모든 개봉작이 손익분기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올해 관객 수로 100만 명을 넘은 작품은 지난 1월 개봉작인 황정민, 현빈 주연의 ‘교섭’이 유일하다. 같은 기간 넷플릭스 등 OTT 영화로 개봉한 ‘정이’와 ‘길복순’이 비영어권 기준 스트리밍 세계 1위를 차지했던 희소식과는 전혀 다른 온도차다.

영화 팬데믹과 OTT가 바꿔놓은 한국 영화 위상

코로나19 이전까지 영화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부담없이 시간을 때울 수 있는 문화생활로 인식됐다. 하지만 넷플릭스 등 코로나19 기간과 함께 성장한 OTT(온라인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 산업은 소비자들의 시청 패턴을 바꿔놓으면서 한국 영화는 위기에 빠졌다.

극장 티켓값도 1만 5000원(주말 기준) 수준까지 올랐다. 줄어든 관객과 불어난 손실을 메우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한 달 치 OTT 구독료보다 비싼 돈을 지불해야 극장에서 작품 한 편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영화계 관계자는 “그래서언지 최근 관객들은 OTT로 작품을 볼 때보다 훨씬 까다로운 잣대로 극장 영화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영화계가 OTT가 가져온 변화를 체화하고 그에 맞게 패러다임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를 제작한 장원석 BA엔터테인먼트 대표는 “관객들 입장에서 극장에서 상영하는 한국 영화가 재미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면서 “티켓값이 오르면서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들의 관점이 전보다 더 능동적이면서, 까다로워졌다”고 분석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제작사 및 투자사들이 영화가 어렵다고 OTT 콘텐츠로 투자 방향을 전향하는 것은 영화의 씨를 더욱 말리는 일”이라며 “더 과감하게 좋은 영화에 투자해야 관객들이 극장에 갈 이유가 생긴다”고 조언했다.

10주에서 4주로 무너진 ‘홀드백’

극장 영화를 보호하는 안전장치였던 ‘홀드백’(극장 개봉 이후 OTT 등 온라인 공개 전까지 갖는 기간)마저 위태로운 추세다. 영화계는 극장 개봉 후 온라인 공개까지 통 10주 정도 기다림의 기간을 가졌다. 최근에는 길어야 8주, 적게는 4주만 기다리면 OTT나 IPTV로 영화를 시청할 수 있다. 급기야 쿠팡에서 제공하는 OTT 서비스인 쿠팡플레이가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를 ‘홀드백’을 거치지 않고 무료 공개하는 서비스(‘쿠플시네마’)를 계획 중이란 소식이 업계에 퍼지면서 영화인들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를 제작한 장원석 BA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오랜 기간 영화산업을 지켜준 ‘홀드백’이란 질서가 무너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다만 “소비자는 최대한 적은 값에 좋은 콘텐츠를 보고 싶고, OTT는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좋은 콘텐츠를 많이 유치해 회원 이탈을 막고 살아남아야 한다. 소비자와 산업의 니즈가 맞아떨어져 생기는 시장경제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거스를 순 없다고 생각한다”며 “무조건 반대하기보단 실제로 이런 시도가 벌어졌을 때를 대비해 어떤 방안을 마련해야 할지 산업 관계자들의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한국수입배급사협회 대표인 정상진 엣나인필름 대표는 “한국 영화가 위기를 맞은 건 극장 티켓값이 오른 것보단, 조금만 기다리면 티켓값보다 훨씬 싼 가격에 OTT로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긴 탓도 크다”며 “감독이나 작가, 배우 등 창작자들이 점점 사라지는 ‘홀드백’ 관행을 지키기 위한 목소리를 직접 낼 필요성이 있다. 모니터로는 누릴 수 없는 스크린 영화 감상의 가치를 창작자가 먼저 지키려는 마음으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영진위는 영화계 해결 방안 모색을 위해 지난 3월부터 투자배급사와 제작사, 감독 등 분야별로 업계 관계자들 간담회를 열고 있다. 빠르면 이달, 늦어도 6월초 출범을 목표로 ‘한국 영화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협의체’ 구성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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