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서사→성소수자 고민…'슈룹' 흥행이 키운 사극의 잠재력

조선판 'SKY캐슬'?…'슈룹' 인기, 기존 사극과 무엇 달랐나
서자 출신 왕·능력주의 경쟁…소탈하고 진취적인 중전
성소수자·부모 고민 진솔히 담아…"현대적 가치 담은 사극"
일각에선 고증 우려도…중국어 자막 표기 논란 일기도
  • 등록 2022-11-02 오전 6:00:48

    수정 2022-11-02 오전 6:00:48

(사진=tvN)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조선시대 왕실교육을 소재로 다룬 tvN 토일드라마 ‘슈룹’의 인기가 나날이 상승 중이다. 여성 캐릭터가 전면에 나서 중심 갈등축을 형성하는 서사, 왕실 안의 성 소수자, 조선판 ‘SKY캐슬’을 방불케 하는 사교육 경쟁 등 기존 사극에서 볼 수 없던 신선한 스토리 요소들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달 15일 방송을 시작한 ‘슈룹’은 사고뭉치 왕자들을 지키기 위해 치열한 왕실 교육 전쟁에 뛰어든 중전 화령(김혜수 분)의 파란만장 궁중 분투기를 그린 드라마다. 첫 방송부터 평균 7.6%(이하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의 높은 시청률로 시작, 시청자들의 입소문을 타 방송 6회 만에 11.3%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톱배우 김혜수의 안방 복귀작이라는 점이 방송 초반 드라마의 화제성에 큰 공을 세웠지만, 기존 사극의 흥행 공식에서 벗어난 신선한 설정과 독특한 스토리 전개 방식이 특히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는 분석이다.

먼저 주인공 화령은 천방지축 왕자들을 찾으러 회초리를 든 채 궁을 두 발로 뛰어다니거나, 이들의 교육을 위해 자신이 직접 일타 강사를 자처하는 등 소탈하고 진취적인 중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 사극 속 중전 캐릭터가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되던 관행과 사뭇 다르다. 조선의 왕인 이호(최원영 분)가 서자 출신에, 중전의 자식인 대군과 후궁의 자식인 군이 대등하게 경쟁하는 풍경도 적서차별이 엄격했던 실제 조선 사회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중전과 시어머니인 대비가 주된 갈등을 형성하는 여성 서사를 채택한 점도 눈에 띈다. 후궁들이 중전의 자리를 넘보는 설정은 기존에도 흔했지만, 대비가 권력을 유지하고 중전을 수세에 빠뜨리고자 후궁들의 욕심과 질투심을 이용하는 모습은 신선하다.

왕실에 성소수자 캐릭터를 내세운 점도 특이하다. 여장이 취미인 셋째 계성대군의 성정체성을 인정한 화령이 아들에게 여장한 초상화와 비녀를 선물로 건네준 장면은 방송 이후 내내 화제를 모았다.

성소수자 자녀를 둔 주부 김미성(가명) 씨는 ‘슈룹’의 애청자라고 밝히며 “‘저 녀석의 마음을 생각해봤어. 넘어서지 못하고 받아들여야 했을 때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난 외면하지 못하겠더라, 엄마니까’라고 말하는 중전의 대사가 성소수자 부모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슈룹’의 인기가 현대인들이 고민하는 다양한 문제와 색다른 가치들을 내포해 공감을 주는 데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중전과 후궁들의 교육 열기는 오늘날 학부모들의 ‘사교육 경쟁’을 떠올리게 하고, 중전과 대비의 갈등은 ‘고부갈등’을 연상케 한다. 서자가 왕이 되고 대군과 군이 경쟁하는 장면은 현대 사회의 ‘능력주의’를 연상시키며 계성대군 에피소드를 통해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부모들이 가진 고민까지 조명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스러운 배경을 지닌 사극도 극적 상상력을 통해 얼마든지 현대적 가치를 담아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다만 공 평론가는 “‘조선’이란 시대에 바탕을 둔 만큼 최소한의 고증을 지켜 시청자들이 실제 역사와 허구 사이에 혼동을 느끼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실제로 일각에선 이와 관련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극의 곳곳에서 중국 사극체가 발견되는 등 고증 논란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슈룹’ 2회에서 황귀인(옥자연 분)의 대사 중 ‘물귀원주’란 단어가 중국어 자막으로 표기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tvN 측은 “‘물귀원주’ 자막 실수는 시청자분들의 지적으로 빠르게 바로잡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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