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환 “지금은 악역, 나중엔 오빠·삼촌돼있을 것”(인터뷰)

`범죄도시`가 발견해낸 또 한명의 신스틸러
이수파 보스 장이수 역 박지환
  • 등록 2017-10-22 오전 7:00:00

    수정 2017-10-22 오전 7:00:00

박지환(사진=신태현 기자)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윤)계상이 형”

박지환(37)의 이 한 마디에 상영관에 웃음이 터졌다. 박지환은 스크린 밖에서도 ‘신스틸러’였다. ‘범죄도시’ 시사회 후 이어진 간담회에서 겉으로 보기에 형같은 박지환이 윤계상보다 두 살 아래여서 웃음이 터진 것이었다.

“살면서 그런 오해 많이 받아요.”

최근 이데일리 사옥을 찾은 박지환에게 ‘범죄도시’ 행사에서 일어난 해프닝을 언급하자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영화 안의 강렬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점잖고 상냥한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박지환은 곧 500만 관객 돌파를 앞둔 ‘범죄도시’에서 장이수 역으로 조선동포 범죄조직 이수파의 두목으로 분했다.

‘대립군’과 ‘범죄조직’ 속 박지환 모습
박지환은 영화계의 떠오르는 신스틸러다.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개성 있는 얼굴에 흔치 않은 배역을 연거푸 따냈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대립군’에서 여진족 골루타 역으로 ‘반지의 제왕’의 골룸에 못지않은 존재감을 드러냈고 ‘범죄도시’에서는 조직의 보스로 살벌한 동시에 마음 짠한 캐릭터로 신스틸러의 몫을 톡톡히 해냈다. 배역을 위해서 변발에 삭발에 과감한 헤어스타일을 시도하면서 어느 순간 거친 역이 어울리는 얼굴이 됐다. 이름은 낯설어도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얼굴뿐 아니라 이름 석자를 각인시킬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범죄도시’에 이어 ‘1987’ ‘마약왕’으로 연달아 관객과 만난다.

-윤계상 일도 그렇고 성숙한 얼굴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겠다.

△그런 일이 많긴 하다. 제대하고 극단에 들어갔을 때 환영회에서 김상호 선배가 나를 보면서 일어나 인사를 하더라.(웃음)

-근래 몇몇 영화에서 조선동포가 범죄자로 묘사되면서 조선동포 사회의 항의가 있었다. ‘범죄도시’ 또한 영화가 공개되기 전에는 상영반대의 목소리가 있었다. 조선동포를 연기하는 입장에서 부담이 됐겠다.

△그런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영화 속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고(‘범죄도시’는 2004년 금천구에서 일어난 조선동포 범죄조직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다. 영화가 단순히 나쁨만 보여주지 않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이야기가 집중돼 있어서 촬영하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장이수란 캐릭터가 그랬다. 여느 범죄영화 속 조선동포와 다르게 인간적인 면모가 부각됐다. 모친의 환갑연 때 눈물을 보이거나 석도(마동석 분) 때문에 독사(허성태 분)와 마지못해 악수를 하는 장면, 장첸(윤계상 분) 일당에 복수할 수 있었던 기회를 석도에 뺏겨서 분해하던 장면에서 그랬다.

△그렇게 봐줘서 감사하다. 환갑 잔치 장면의 경우, 시나리오 상에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다. 감독님께 어머니를 안아주고 싶고, 업어주고 싶고 그 상황에서 아들로서 할 수 있는 건 다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 모습은 장이수가 ‘착한 척’을 하는 게 아니라 아들이라면 누구나 갖는 보편적인 마음라고 생각했다. 대신 마동석과 윤계상 사이에서 도드라지면 안 되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그 중간의 수위를 지키느라 부드럽게 연기하려고 애썼다. 재미있는 게 장이수는 한 조직의 두목이면서도 석도에 상대가 안 되는, 형사의 눈치를 봐야하는 인물이었다. 마석도와 장이수의 관계가 왠지 ‘톰과 제리’ 같아서 연기하는 즐거움이 있더라.

박지환(사진=신태현 기자)
-대개는 그냥 보고 넘길 수 있는 인물에게서 흥미로운 요소를 찾아내고 그것을 살려내는 안목이 있는 것 같다.

△예전에도 딴 곳에서 말한 적이 있지만 1등 2등 3등보다 4등 5등에 더 관심 많다. 우리(배우)가 하는 일이 주류의 얘기도 하지만 주류에서 벗어나거나 밀려난, 지쳐 있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변해서 매력적인 것 같다.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계층뿐 아니라 잘난 사람도 그 이면에 감춰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을 수 있고 쓸쓸함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이어진 것 같다. 밖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면서도 집에서는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사회에서 배우는 것이 다르다’는 것에 대한 고민, 사는 것에 대한 고민, 이런저런 고민들로 방 벽이 새까맣게 낙서가 돼있었다. 그런 고민이 나중에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연기도 하게 된 것 같다.

-연기를 한 계기가 궁금하다. 그 전에 흥미로운 점이 의상디자인학과에 입학을 했던데.

△고3 때 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다. 김삿갓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어머니가 ‘너 진짜 대학 안 갈 거냐’며 걱정을 하기에 당시에 가장 끌렸던 곳으로 진학을 한 거다. 그때만 해도 대학에 안 가면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머니의 소원이라 해서 대학에 갔지만 결국 한 학기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뒀다. 사실은 어렸을 때부터 책을 정말 좋아해서 글을 쓰고 싶었는데 글을 쓰며 살기에는 내 엉덩이가 너무 가벼웠다.(웃음)

학교를 관둔 후에 ‘아 몰라’ 이러면서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4개월 동안 동해로 남해로, 돈 떨어지면 일용직으로 여비를 벌면서 여행을 다녔다. 그러다가 마니산에 올랐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연기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연극을 했다.

-연기를 한다니까 어머니가 뭐라고 하던가.

△어머니는 ‘우리 지환이가 드디어 지환이다운 걸 찾았다’며 ‘열심히 잘해 보라’고 흔쾌히 허락했다. 어릴 때부터 내가 뭔가를 한다고 하면 어머니가 단 한번도 ‘하지 마라’고 말한 적 없다.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 지환이가 피아노를 잘치지’ 시인이 되겠다고 했을 때는 ‘우리 지환이 감성이 또 끝내주지’라면서 지지해줬다. 그런 어머니 덕분에 연기를 행복하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연기를 하면서 지하실에서 먹고 자고 했는데도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생활고나 이런 것보다도 어떤 세계를 표현하고 알아가는 게 더 힘들고 괴로웠다. 그런데 그 고통 끝에 얻게 되는 결실이 너무 매력이라 힘들면서도 포기가 안 되더라.

-연극무대에서 스크린으로 넘어오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특별히 어려운 건 없었다. 오히려 카메라가 궁금했다. 처음에는 얘(카메라)가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 같아서 ‘이거 뭐지’ 싶었는데 나중에는 작은 것도 정말 잘 보여주는 요물인 것을 알게 됐다. 그런 데서 연극과 또 다른 즐거움을 느꼈다.

-센 역할만 하다 보면 그런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을 수 있는데.

△이미지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다. 지금은 내 얼굴이 낯설어서 강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 얼굴이 익숙해지면 어느 순간 동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오빠나 삼촌이 돼있을 거고, 또 어느 순간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을 거다. 그때를 위해서 내가 할 일은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인 것 같다.

박지환(사진=신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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