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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둘. SBS 수목 미니시리즈 ‘빅이슈’는 지난 3,4일 결방했다. 늑장 촬영이 원인이었다. 지난달에는 미완성된 컴퓨터 그래픽(CG) 화면이 그대로 전파를 타는 대형 방송사고까지 터졌다. 당초 총 36부작(30분 기준)으로 기획됐지만 4부작을 줄인 32부작으로 종영하게 됐다.
드라마는 한류의 확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지난 2월 발표한 ‘2019 해외한류실태조사’에 따르면 영화, 예능 등을 제치고 드라마가 월평균 지출 비용이 가장 큰 한국 콘텐츠로 파악됐다. 한류 스타를 보기 위해 적극적으로 지갑을 연다는 의미다. 한꺼풀 벗겨보면 제작 현실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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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부터 각 방송사는 주 68시간 근무제를 시범 운용하고 있다. 방송업계 업무 특수성에 따라 주 52시간 근무제에 1년 유예기간을 갖게 된 것이다. 즉 하루 근무시간 14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고 주 근무시간은 68시간으로 제한하는 방침이다. 해당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대본에 첨부하는 등 나름 자구책을 마련했다.
근로기준법을 소재로 한 MBC 월화 미니시리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을 연출하는 박원국 PD는 “스태프 대표를 선출하고 스태프 대표와 협의 하에 근로시간과 휴식시간 기준을 정해서 이행하고 있다”며 “준수하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투자나 정책만으로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업계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늘어난 인력이나 제작 기간은 비용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 외주 제작사 관계자는 “막내 스태프들에 대한 처우나 단기간 내 고강도 노동을 요구하는 근무 환경이 개선돼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한고 실제로 과거와 비교해 개선됐다”면서도 “이면에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 제작비에 대해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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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직군이 주목받고 있다. 프로듀서, 스케줄러나 로케이션 매니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프로듀서는 PD·작가가 창작에 전념할 수 있게끔 현장을 관리하면서 큰 그림을 그려나간다. 드라마 판을 움직이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드라마 시장의 후발주자인 스튜디오 드래곤은 이 같은 프로듀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2016년 CJ E&M(현 CJ ENM) 드라마 사업 부문을 물적 분할해 설립된 스튜디오 드래곤은 지상파와 다른 체제로 운영된다. 지상파에선 캐스팅부터 편성, 촬영까지 담당 PD의 힘이 막강하다. 스튜디오 드래곤은 프로듀서들에게 PD에 버금가는 권한을 부여한다. 직접 아이템을 개발하기도 하고, PD와 작가를 연결시키기도 한다. 지원 업무에 그치지 않고 전 과정에 적극 개입한다. 시청률을 보장하진 않지만 실수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프로듀서는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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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하나의 드라마에 다수의 PD와 작가가 참여하는 집단 창작 시스템이다. 총 7개 에피소드가 방송한 HBO ‘왕좌의 게임 시즌7’(2017)는 감독 4명, 작가 3팀이 참여했다. 기획을 담당한 책임 프로듀서로서 각본에도 참여한 데이비드 베니오프와 D.B. 와이스가 중심을 잡아준 덕분이다.
지난 2월부터 촬영을 시작한 넷플릭스 ‘킹덤2’도 1화는 기존의 김성훈 감독이, 2화부터는 박인제 감독이 찍는다. 김 감독은 예정된 차기작을 위해 박 감독에게 배턴을 넘겨줬다. 창작자 개인에 대한 의존도가 큰 국내 드라마 시장에선 드문 풍경이다. 일찌감치 대본이 완성돼 사전 협의할 시간이 충분했고, 매일 회계를 점검하는 등 현장을 꼼꼼하게 관리하는 넷플릭스이기에 가능했다. 기획자로서 프로듀서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기도 하다.
박상주 성균관대 영상학과 겸임교수는 “전문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등 역량을 갖춘 프로듀서 양성이 중요하다”면서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제작 현장이 만들어진다면 지금과 같은 주먹구구에서 벗어나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