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오일머니 퍼붓는 사우디 PIF 골프대회에 가보니

4일 개막 PIF 사우디 인터내셔널 축제 같은 분위기
어린이 팬 위한 다양한 체험 공간 눈길
퍼터 처음 잡은 어린이, 공 안들어 가도 마냥 즐거워
세계 정상급 스타도 대거 출전..메이저 우승자만 9명
스포츠 강국 꿈꾸는 사우디 노력의 축소판
  • 등록 2024-12-06 오전 12:00:00

    수정 2024-12-06 오전 12:00:00

[리야드(사우디아라비아)=이데일리 스타in 주영로 기자] 4일(한국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리야드 골프클럽에서 열린 PIF 사우디 인터내셔널 1번홀 티잉 그라운드 옆에 있는 팬 존(Fan Zone)에서 한 진행요원이 어린아이를 상대로 골프스윙 시범을 보였다.

4일(한국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리야드 골프클럽에서 열린 아시안투어 PIF 사우디 인터내셔널 팬 존에서 진행요원이 어린이 앞에서 클럽으로 골프공을 튕기는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주영로 기자)
경기장 한쪽 편에 마련된 팬 존은 온종일 시끌벅적했다. 오전 일찍부터 수백 명의 어린이 팬이 찾아왔고 곳곳에 마련된 체험 부스에선 골프, 축구, 농구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기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골프를 처음 접하는 어린이는 진행요원의 도움으로 겨우 클럽을 잡고 휘둘러 공을 맞혔다. 몇 번이나 퍼터를 휘둘러도 공을 맞히지 못하던 어린이는 겨우 맞힌 공이 데굴데굴 굴러가자 신이 나서 깔깔 웃었다.

또 다른 쪽에선 아이들이 그림 그리기 삼매경에 빠졌다. 코스를 돌아보며 눈으로 봤던 순간을 그림으로 남겼다. 한 아이는 초록의 그린과 깃발을 캔버스에 담기도 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팬들이 지나는 벽면에 붙여 또 다른 팬들이 볼 수 있게 했다. 프로골프대회가 아니라 마치 스포츠 체험 박람회 같다.

시뮬레이터 체험 부스엔 줄이 길게 늘어섰다. 보조 장비를 착용하면 클럽을 휘두르지 않고도 마치 골프 치는 것과 같은 가상 현실 체험을 할 수 있다. 게임처럼 즐길 수 있어 유독 인기가 많았다. 가상 현실로 골프를 체험한 어린이들은 마냥 신기해했다.

한 어린이 팬이 퍼터로 공을 굴리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사진=주영로 기자)
프로골프대회에서 어린이 팬을 위한 즐길 공간을 마련해 두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메이저 골프대회 마스터스는 개막에 앞서 ‘칩 앤 퍼트’라는 주니어 골프대회를 개최한다. 어린 나이부터 골프와 친숙하게 유도하는 미니 골프대회다. KPGA 투어는 올해부터 아이를 동반한 선수들의 가족을 위해 패밀리 룸을 만들어 호응을 얻었다. 아이들은 아빠의 경기를 보며 따라하기도 했다. 패밀리 룸을 찾는 가족이 늘면서 내년에는 공간을 더욱 확대해 운영하기로 했다.

하지만 PIF 사우디 인터내셔널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린이 팬이 직접 체험하는 시설을 대거 설치했다. 체험하면서 자연스럽게 골프는 물론 다른 스포츠에 흥미를 갖도록 유도한 게 인상적이었다.

팬 존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보내는 사이 필드에선 세계 정상급 스타들의 우승 경쟁에 치열했다. PIF 사우디 인터내셔널은 총상금 500만 달러로 PGA 투어나 LIV 골프와 비교하면 규모가 작다. 그러나 세계 골프계의 큰손으로 등장한 PIF가 주최한 대회인 만큼 스타가 몰려왔다.

이번 대회에만 더스틴 존슨과 버바 왓슨, 패트릭 리드, 세르히오 가르시아, 캐머런 스미스 등 역대 메이저 대회 우승자만 9명이 나왔다. 43명은 아시안투어에서 활동하며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린 강자다. 한국과 일본, 호주 투어 상위랭커도 초대해 32개국 선수가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장유빈과 케빈 나, 대니 리가 18번홀 그린에서 퍼트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주영로 기자)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을 위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만들었다. 18번홀 그린 뒤쪽에는 멋스러운 올드카와 스포츠카를 전시했다. 남성팬 3명은 자동차 앞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번갈아 운전석에 앉아보기도 했다.

연습그린과 코스에선 흥겨운 음악도 나왔다. 조용히 연습하고 경기를 보는 다른 골프대회와는 다른 분위기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선수들도 이내 적응해 리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는 선수도 보였다.

경기가 끝나자 18번홀은 거대한 콘서트 무대로 변했다. 그린 옆 무대에 화려한 조명이 켜지더니, 밴드의 신나는 공연이 시작됐다. 삼삼오오 모여 공연을 관람하는 팬들은 흥에 겨운 듯 어깨를 들썩이고 두 팔을 들어 환호했다.

경기가 끝난 뒤 리야드 골프클럽 18번홀 그린 옆에선 화려한 콘서트가 열려 골프팬들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 (사진=주영로 기자)
사우디아라비아는 스포츠 강국을 꿈꾸고 있다. 골프는 그중 핵심이다. 국부펀드 PIF가 막대한 자금을 앞세워 2022년 LIV 골프를 창설했고, 그 뒤 아시안투어, 레이디스유러피언투어와 손잡고 규모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프로골프에 쓰는 비용만 연간 1조 원이 넘는다.

3개 투어 상금으로만 약 6000억 원 이상, 선수와 VIP 초청료와 행사 운영비 등으로 4000억 원 넘게 쓴다. 단순히 상금을 늘려 규모만 키우는 게 아니었다. 프로골프 대회라는 딱딱한 분위기가 아닌 남녀노소 함께 즐기는 축제의 공간으로 변화시켜 누구나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새로운 스포츠문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골프를 비롯해 스포츠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건 스포츠를 통한 미래 산업과 연관돼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2016년 ‘비전 2030’을 통해 경제 다각화 및 레저,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 일자리 창출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일각에선 정치, 인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스포츠로 세탁하려는 이른바 ‘스포츠워싱’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최근 ‘글로벌 스포츠업계의 블랙홀 사우디아라비아’ 보고서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스포츠 투자는 국가 홍보 프로젝트 차원의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석유에 의존한 경제구조를 바꾸려는 중장기적 관점의 투자로 봐야한다”고 평가했다. 스타를 끌어모으고 남녀노소가 함께하는 PIF 사우디 인터내셔널은 과감한 투자를 통해 글로벌 스포츠 강국에 한 걸음 더 다가간 사우디아라비아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한 자리였다.

4일(한국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리야드 골프클럽에서 열린 PIF 사우디 인터내셔널 개막에 앞서 주요 출전 선수들이 우승트로피 앞에서 기념촬영하며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사진=PIF 사우디 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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