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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은 한 순간 살인사건의 무대가 되었다. 1970년 평양 태생 ’김철’. 그는 이른 아침, 공항에서 두 명의 여성으로부터 독극물 공격을 받고 숨졌다. 그리고 한국의 한 종편채널을 통해 그의 진짜 신원이 공개됐는데, 그는 바로 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현 최고 권력자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이었다.
공개된 두 여성 용의자는 인도네시아 국적의 아이샤와 베트남 국적의 흐엉. 이들은 어떤 남성들에게 속아 TV방송용 몰래 카메라인 줄 알고 벌인 일이라고 경찰에 진술했다. 특히 베트남 국적의 흐엉은 한국대중문화에 관심이 많고 한국을 드나든 적도 여러 번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두 여성은 얼굴을 가리거나 변장을 하지 않았다. 또 흐엉은 똑같은 옷을 입고 공항에 다시 나타나 붙잡혔다. 이들의 진술대로 몰랐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 하지만 CCTV 속 두 여성은 마치 훈련된 요원처럼, 3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범행을 끝내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아난다. 김정남은 피습 이후 30분 만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약 2시간 내에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강력한 독성을 지닌 독극물의 정체는 신경작용제인 VX였다. VX는 아주 적은 양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독성이 강해 생화학무기로 분류되는 물질이다.
한편, 말레이시아 경찰이 새로운 용의자 북한국적의 ‘리정철’을 검거하면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수사결과, 사건의 배후엔 북한국적의 남성 7명이 더 있었고, 그 중엔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도 포함돼 있었다. 피살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추정이 대두됐다. 김정은의 어머니가 재일교포이기 때문에 김정남에게 백두혈통의 정통성에 대한 열등감이 작용했을 거라는 주장, 만에 하나 현재 북한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의 지위를 위협할지 모를 가능성을 차단하려 했다는 추측, 그리고 심지어 김정남이 지지 세력을 모아 망명정부를 세우려 했다는 이른 바 망명설까지 나왔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제작진에 “북한의 소행,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 범행동기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범행동기 자체가 일단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사건을 담당하는 말레이시아 경찰은 용의자들이 ‘북한국적’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다고 했다. 하지만 김정남 피살 직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가안보회의(NSC)를 두 차례나 열고 이번 테러로 우리정부와 국민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능성까지 발표했다.
더불어 정치권에서는 이 사태를 계기로 사드 배치를 조속히 진행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북한의 테러위협이 언제 국내를 향할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 빨리 사드를 설치해서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북한 정권이 권력 강화를 위해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을 국내 정치용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제작진은 이번 방송을 통해 “공개된 장소에서 감행된 충격적인 김정남 암살사건의 여러 의문점들을 추적하고 사건의 배경으로 제기된 여러 가설들을 검증해본다. 그리고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인 현 시점에서 일어난 이 사건이 우리 안보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고 전했다. 4일 밤 11시 5분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