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윤정 이소현 기자] “건물주 만선호프, 대화하자 더니 강제집행 웬 말이냐. 상생하라.”
서울 중구 을지로 노가리 골목을 42년간 지켜온 노포 ‘을지OB베어’가 강제 철거된 지 일주일째인 28일, 을지OB상생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명도집행 규탄 집회를 열었다.
| 서울 중구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 있는 을지OB베어 앞에서 을지OB상생공동대책위원회가 명도집행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김윤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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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6시 30분께부터 시작된 집회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강호신 을지OB베어 대표를 비롯한 참가자 6명이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앉아 ‘건물주 만선호프는 을지OB베어와 상생하라’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강 대표는 “21일 강제 철거가 있기 전날까지 노가리 골목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갖고 장사했다”며 “맥주나 팔면서 무슨 책임감이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42년간 한자리에서 단일 품목으로 버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수영 을지OB베어 대표는 “42년 전 장인어른이 스티로폼 깔고 먹고 자면서 일군 가게가 을지OB베어”라며 “대한민국 최초의 생맥줏집이자 노가리 골목의 원조라는 자부심으로 노가리와 냉장숙성 방식의 맥주를 고집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 대표는 “그런 가게가 강제집행 됐다고 해서 ‘그래 알았어’하고 있을 순 없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 서울 중구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 있는 을지OB베어 주차장에서 한 참가자가 명도집행을 규탄하는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사진=김윤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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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OB베어는 강 대표의 부친이자 최 대표의 장인인 강효근 창업주가 1980년 을지로3가 골목에서 개업해 처음으로 ‘노맥’(노가리+맥주)을 선보인 노가리 골목 시초다. 2013년부터 2대째 이어져 온 을지OB베어는 노가리 골목에 기여한 역할을 인정받아 지난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고, 2018년 호프집으로는 최초로 ‘백년가게’로 선정되기도 했다. 백년가게는 30년 이상 장사한 소상공인이 100년 이상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중소벤처기업부 정책이다.
이날 직장인 퇴근 시간과 맞물려 수 많은 사람이 집회 현장을 지나쳤다. 을지OB베어 바로 맞은 편 뮌헨호프는 야외 좌석까지 만석이었고, 바로 옆 만선호프 2호점 대기줄도 길게 늘어졌다.
을지OB베어 명도집행을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한 조성현(31)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을지OB베어 사연을 접했다. 조씨는 “20대 때는 만선호프가 이렇게까지 많진 않았다”며 “사장님이 겪은 일을 언제든 내가 겪게 될 수도 있단 생각에 피켓을 들게 됐다”고 말했다.
| 지난 21일 강제 철거 된 을지OB베어 문 앞에 경고장과 함께 상생을 요구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사진=김윤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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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 후 처음 생긴 단골집이 을지OB베어라는 정다솜(32)씨는 “다양성이 없는 골목은 힘을 잃는다고 생각한다”며 “OB베어의 사례를 단순히 ‘재산권 지키기’로 접근하기보단 골목의 다양성을 생각해봤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7시 20분께부터는 집회 현장 맞은편 을지OB베어 주차장에서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이종건 옥바라지선교센터 사무국장은 “을지로 노가리 골목 자체가 서로 이해하고 상생하면서 만들어진 골목”이라며 “만선호프가 생태계를 무너뜨려 놓고 혼자서 이 골목을 독식하려고 하는 건 ‘욕심’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민이 이 골목에 다양한 가게들이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공대위는 이날 오후 10시 30분부터 상생을 요구하는 내용의 손 피켓을 들고 을지로 노가리 골목 일대를 행진할 예정이다.
| 거리두기 전면 해제 첫 일요일인 24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3가 노가리골목에서 많은 시민들이 주말 오후를 즐기고 있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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