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신(新) 냉전, 기후변화 등으로 비롯된 글로벌 대격변기, 혼탁해지는 세계질서 속에 대한민국은 거센 풍랑을 만난 것처럼 혼돈과 위기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빠진 형국입니다. 그간 짓밟힌 기업가 정신, 손상된 국격의 복원을 위해 안으로의 개혁이 절실한 때입니다.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된 윤석열 당선인은 다행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로 세워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통합과 번영의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데일리는 이에 발맞춰 정치, 경제, 사회 등 주요국에서 통용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찾아 우리 시장에 적용 가능한 해법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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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준기 함지현 최영지 기자] 1. 국내 가구·인테리어 1위 업체 한샘의 최대주주는 올 1월 조창걸 명예회장에서 IMM프리이빗에쿼티(PE)로 바뀌었다. 조 명예회장이 세 딸에게 보유 지분을 증여할 경우 따라오는 막대한 상속세 폭탄 때문이라는 게 재계의 정설이다. 증여세로 주식을 물납할 경우 경영권마저 위태로울 수 있는 만큼 차라리 승계 대신 매각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2. 욕실용 자재를 제조하는 와토스코리아는 사업을 확장하려다 포기했다. 제조업 분류상 업종이 바뀌면 상속공제 사후관리 요건(업종 유지)을 지키지 못하게 되게 때문이다. 상속세제가 가업승계를 넘어 회사 성장까지 가로막은 셈이 됐다.
우리 기업들은 가업 승계의 최대 걸림돌로 막대한 조세 부담, 즉 상속세 폭탄을 꼽는다. 최고세율(50%)에 최대주주 할증률 20%, 자진신고 공제율 3%까지 적용하면 최대 60%에 달하는 상속세로 인해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중소·중견 기업은 대부분 M&A 후보군’이란 우스갯소리까지 나돌 정도다. 승계 때 부담을 낮춰주기 위한 ‘가업상속공제’가 있지만, 거미줄 같은 사후관리 제도 탓에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업종 변경을 엄격히 제한하다 보니 신사업 투자 등은 꿈도 꾸지 못한다. 결국 폐업하거나 회사를 넘겨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기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이유다.
그렇다고 상속세가 나라 곳간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국세청이 거둬들인 세수에서 상속세·증여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3% 남짓이다. 재계 관계자는 “상속세 앞에 ‘징벌적’이란 수식어가 붙는 이유”라고 했다.
국내 최고 부자 가족인 삼성 일가도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해 주식 매각이란 초강수를 두고 있다. 12조원의 상속세 부담은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낮추는 등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향후 삼성의 투자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삼성전자가 ‘6만전자의 늪’에 빠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장 겸 한양여대 세무회계과 교수는 “이제는 상속받은 보유 자산을 팔 때까지 세 부담이 미뤄지는 ‘자본이득세’나 상속인 각자가 실제로 나눠 받는 재산 각각에 과표 구간·세율을 적용하는 ‘유산 취득세’ 등의 방식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 재계에선 13대째, 35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의 가족기업 머크사 사례를 주목하는 분위기다. 번 돈은 다시 재투자한다는 핵심가치 속에 세계 최대 의약·화학 회사로 자리 잡은 머크사는 독일 상속세제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재계 관계자는 “독일은 2010년 장기간 고용 유지 등 일정 조건만 이행하면 상속세를 부과받지 못하도록 상속세법을 개정했다”며 “가족경영을 부의 대물림이 아닌 장수기업을 늘리는 방법으로 보는 분위기”라고 했다. 단순 계산상 상속세를 3번 내면 경영권을 잃는 우리나라 상황과 대비된다.
글로벌 추세와 달리 거꾸로 걷는 법인세 역시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과거 스웨덴의 높은 법인세율 탓에 이케아가 네덜란드행(行)을 택한 사태가 한국에서 벌어지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는 우려가 적잖다. 1980년대 초까지 법인세율이 무려 60%에 육박했던 스웨덴은 뒤늦게 법인세제를 손봤지만 이케아는 아직도 법인세를 스웨덴이 아닌 네덜란드에 내고 있다. 세수 확보를 위해 설계한 높은 법인세율이 다른 나라 배만 불리는 역설적 상황을 만든 셈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작금의 법인세로는 리쇼어링(한국 기업의 국내복귀)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