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종묘제례악이 울려 퍼졌다. 조선을 대표하는 궁중음악이자 음악·노래·춤이 한데 어우러진 전통예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공연이다. 74년 만에 국민 품으로 돌아온 청와대의 개방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역대 왕을 칭송하며 감사와 고마움을 전하는 종묘제례악 공연은 청와대 개방의 의미를 더했다.
| 서울시무용단 단원들이 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서울시무용단 연습실에서 ‘일무’의 한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세종문화회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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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예술의 정수와 현대무용의 만남이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면 접하기 힘든 종묘제례악의 음악과 춤이 세종문화회관에서 현대적인 무용 공연으로 재탄생해 관객과 만난다. 서울시무용단이 오는 19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초연하는 ‘일무’다. 국립무용단 ‘향연’으로 전통의 현대화를 통한 무용 대중화 가능성을 보여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가 연출을 맡았다. 정 연출과 서울시무용단과의 첫 작업으로 공연계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11일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서울시무용단 연습실에서 만난 정 연출은 “‘향연’ 작업을 위해 다양한 전통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종묘제례악에서 추는 일무(佾舞)에 대해 알게 됐고 그 독특함에 반했다”며 “일무를 전통 그대로 재현하는 것과 현대화하는 것 모두 의미 있다는 생각에서 이번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정 연출이 ‘일무’를 독특하다고 표현한 데는 이유가 있다. 종묘제례악은 말 그대로 제사에 사용되는 음악으로 경건함이 강조된다. 일무 또한 춤이지만 제사 의식의 표현이기도 해 움직임 하나하나가 매우 느리고 절제돼 있다. 요즘 관객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느린 호흡에 빠져들면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되는 춤이기도 하다.
| 서울시무용단 단원들이 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서울시무용단 연습실에서 ‘일무’의 한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세종문화회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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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무용단 ‘일무’는 이러한 종묘제례악과 일무를 새롭게 재해석해 동시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1막에선 전통 그대로의 일무를 선보이고, 3막에서 이를 새롭게 재구성한 ‘신일무’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보여준다. 특히 3막에선 49명의 서울시무용단 단원들이 선보이는 역동적인 군무로 3000석 규모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를 꽉 채우는 진풍경을 선사한다. 2막은 1막과 3막을 이어주는 ‘브릿지’의 의미로 춘앵전 등의 궁중무용을 배치했다.
정 연출은 “일무 하나만으로는 관객이 공연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아 2막에선 잠시 쉬어가는 의미에서 춘앵무 등 궁중무용을 새롭게 재구성해 넣었다”며 “전통 일무가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거쳐 현대화하는 과정을 무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 연출은 국립무용단 ‘향연’ 외에도 ‘단’ ‘묵향’ ‘산조’, 경기도무용단 ‘경합’ 등 한국무용 단체들과 꾸준히 작업하며 전통의 현대화 작업을 이어왔다. 그가 말하는 전통의 현대화는 “생략과 강조를 통해 전통을 대중이 보다 쉽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 연출은 “저는 현대적인 창작도 좋아하지만 전통도 좋아한다”며 “전통의 현대화가 곧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 서울시무용단 ‘일무’의 단원 최태헌(왼쪽부터), 안무가 김재덕, 정혜진 서울시무용단 예술감독, 정구호 연출, 안무가 김성훈, 단원 김지은이 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서울시무용단 연습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세종문화회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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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어려운 지금 시대에 필요한 작품”정혜진 서울시무용단 예술감독, 영국 아크람 칸 컴퍼니 출신 안무가 김성훈, 현대무용단 모던테이블 예술감독인 안무가 김재덕이 안무로 참여한다. 김재덕은 음악도 맡아 종묘제례악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담당했다.
정 예술감독은 “‘일무’는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서도 각자의 질서 속에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나가면 그 마음이 하나가 돼 하늘에 감동을 주고 행복을 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지금 시대에 필요한 작품”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