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이재용 불기소' 권고의 의미

19개월간 검찰 수사에도 혐의 소명 부족 결론
일각에선 제도 취지 무색케 하는 억지 주장 펼쳐
'유전무죄' 안 되지만 재벌 총수 역차별도 없어야
  • 등록 2020-07-09 오후 4:50:05

    수정 2020-07-09 오후 9:42:09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검찰은 기어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기소할까?” 기자가 최근 만난 취재원들과 지인들의 공통 질문이다. 취재를 위해 만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부장급 직원에서 최고경영자까지 하나같이 이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법조인과 의료인, 학자, 공무원 등 다양한 분야의 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쯤되면 국민적 관심사라고 할 만하다. 평소 이들의 정치 성향이나 재벌에 대한 견해는 저마다 다르지만, 이 문제에 관해선 의견이 한쪽으로 쏠렸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를 검찰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이 여론을 살피면서 기소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범죄혐의에 대한 증거가 있다면 여론이 어떻든 법과 원칙에 따라 기소를 하는 게 옳다. 문제는 검찰이 19개월에 걸쳐 압수수색만 50여차례 하고 관계자 110여명 소환과 430여회 조사를 벌였는데도, 판사나 수사심의위원들을 납득시킬만한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법원이 검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도, 수사심의위가 불기소 권고를 한 것도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소를 주장하는 측에선 수사심의위의 결론 자체를 문제삼기도 한다. 심의위원에 포함된 교사나 승려가 자본시장법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가졌을 리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심의위원 13명 중에는 해당 분야 교수를 포함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회계사 등도 있었다. 심지어 한 두 표 차이로 결론이 난 것도 아니다. 10 대 3으로 불기소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여당 의원은 “돈 있으면 재판도 수사도 없다는 선례를 남긴 지극히 불공정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다른 의원은 “검찰은 명예를 걸고 이 부회장을 기소하라”고 촉구했다. 또 일부 시민단체와 지식인은 검찰이 19개월 동안 수사했고 관련 기록이 수십만쪽에 달한다며 기소가 당연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검찰이 삼성과 이 부회장을 대상으로 19개월 동안 수사한 것이 문제인데도, 이들 여당 의원과 시민단체들에게서는 헌법이 규정한 평등권과 자유권의 인식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들의 막무가내식 주장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따갑다. 그럴 거면 검찰수사심의위원회라는 제도를 왜 도입했냐는 비난이 일고 있다.

재계에선 이 부회장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가 삼성의 위기 극복은 물론 한국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삼성은 올 들어 대규모 투자와 고용을 잇따라 발표한 것은 물론 협력사, 스타트업 등과의 ‘동행’을 확대하며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여기에는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를 위한 투자를 멈춰서는 안 된다”는 이 부회장의 결단력이 작용했다. 한국 기업들이 소재·부품·장비 분야 역량을 단기간 내 높일 수 있었던 것도 삼성의 도움이 컸다. 삼성전자(005930)의 2분기 실적이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것 역시 이 부회장이 위기 대응을 위해 국내외 사업장을 종횡무진한 점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총수 공백이 생겨도 일상적인 경영은 유지되겠지만,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대규모 사업 추진은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가 많다.

물론 이런 이유 때문에 이 부회장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주장은 아니다. ‘유전무죄’는 있어선 안 된다. 아무리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큰 재벌 총수라도 죄가 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반대로, 단지 재벌 총수라는 이유로 무리하게 단죄하려는 반(反)재벌 정서 역시 옳지 않다. ‘유전유죄’ 또한 법 앞의 평등 원칙에 위배되는 역차별이다.

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18일 중국 시안에 위치한 삼성반도체 사업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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