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아프간 대사 “가방만 챙겨 탈출”....긴박했던 40시간

교민 1명 설득 위해 대사 포함 직원 3명 남아
"탈레반 이렇게 빨리 아프간 장악할 줄 몰랐다"
주카타르 대사관서 대사직 업무 지속 예정
  • 등록 2021-08-18 오후 6:25:02

    수정 2021-08-18 오후 6:59:33

최태호 주아프간 대사가 18일 화상시스템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탈출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제공)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차림새가 이래서 죄송하다”

18일 한국 기자들과의 화상 기자회견에서 만난 최태호 주아프가니스탄 대사는 먼저 사과부터 했다. 카불공항까지 가기 위한 헬기에는 가로 30cm 세로 30cm 높이 20cm 정도의 작은 가방만 허용돼 미처 양복을 챙기지 못했다는 설명이었다.

탈레반이 이렇게 빨리 아프간을 장악할지는 최 대사 역시 알지 못했다. 대사관 경비업체로부터 탈레반 부대가 차로 20분 거리까지 진입했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것은 15일 오전 11시 30분(현지시간)께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최 대사는 방어선이 어느 정도 유지될 줄 알았다고 한다.

이후 우방국 대사관에서 ‘바로 모두 탈출하라’는 긴급공지를 받았고, 연락이 닿은 우방국 대사들도 ‘지금 정말 급한 상황이다. 빨리 가야 한다’고 했다.

최 대사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 지시를 받고 철수를 시작했다. 매뉴얼대로 대사관 내 주요 문서 등을 파기하고 잠금장치를 한 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우방국 대사관으로 이동했다. 대사관의 현지인 직원들에게는 자택 등 안전한 장소로 가라고 지시했다.

미군 헬기로 카불공항까지 이동했을 때는 이미 여러 국가 대사관 직원들이 밀려드는 상황이었고, 최 대사는 아프간의 유일한 교민에게 철수를 설득하러 직원들을 보냈다. 당시 이 교민은 처음엔 난색을 보였다고 한다. 사업 기반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철수는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최 대사를 포함, 직원 3명만이 일단 남아 교민 철수 작업을 지속기로 했다. 처음에는 난색을 보이던 교민도 공수권 경보가 울리는 등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자 마음을 바꿨다. “자기 때문에 대사관 직원분들이 남아계시고 미안하다 하시더라”라고 최 대사는 전했다.

이후에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탈레반 카불 입성 소식을 들은 아프간인들이 공항을 들이닥치며 아비규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급기야는 민간공항을 점거했던 아프간 군중들이 군 공항까지 밀려들어왔다. 아프간 카불 공항은 민간공항과 군공항이 인접해있다.

땅 위에는 총을 든 아프간 군중들이, 공항 상공에는 우방국 헬기들이 맴도는, 마치 영화에서 보던 전쟁과도 같은 광경이었다고 최 대사는 회고했다.

우리 대사관 직원들과 교민은 우방국의 군용기를 활용해 탈출할 예정이었지만 군용 공항 활주로까지 아프간인들이 몰려들며 출발은 지연에 지연을 거듭했다. 지원군이 도착해 상황을 정리할 때까지 군용 비행장 대합실 등에 머물며 상황이 나아지기만을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17일 새벽 3시가 돼서야 이들을 태운 군용기는 겨우 카불 상공을 떠났다.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 최 대사는 “좌석 구분 없이 거의 다 바닥에 앉아서 탈출했다. 탑승 우선순위가 거의 미국인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미국인이었고 그다음에 우리와 같은 제3국인, 일부 아프간인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차 대사는 당분간 주카타르 대사관에 머물며 대사임무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간의 현지 상황을 지속해서 파악하고 인도적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제사회와 협력해 대처를 나가는 것이 시급하다. 그는 “너무 바빠 아직 가족과도 통화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아프간 젊은 국민들을 중심으로 탈레반 치하 시절(1996~2001년)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상황에서 탈레반 역시 이전과 같은 강압적인 통치를 하지 않을 것이란 것이 그나마 희망이다. 실제 탈레반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첫 기자회견에서 여성 권리를 존중할 것이라며 국제사회에서의 평화적 관계를 추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막상 부르카(눈을 제외한 머리부터 발 끝까지 여성의 몸을 가리는 옷)를 입지 않은 여성을 총살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오히려 탈레반 치하를 겪지 못한 이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만행이 재현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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