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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일경 기자] 1.3초 간의 짧은 시간 안에 성추행이 가능한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컸던 `곰탕집 성추행` 사건. 대법원이 지난 12일 직접 증거 없이 피해자 진술만으로 A(39)씨의 성범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것을 두고 논란이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검사의 입증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에 이르지 못한 경우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형사법 대원칙이 유독 성범죄와 관련해 완화되는 추세가 바람직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이 결정적 증거로 작용한 곰탕집 성추행 상고심 선고 이후 “진술의 신빙성을 특별한 이유 없이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입장이 유지되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대법원 2부는 진술의 신빙성 판단 기준으로 △진술 내용의 주요한 부분이 일관될 것 △경험칙에 비춰 비합리적·모순되는 부분이 없을 것 △허위로 가해자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것 등을 제시했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성추행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피해자 진술뿐일 때 유죄 판단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면서 “허위로 가해자에 불리한 진술을 할 동기가 주된 거름막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양형 상 검찰 구형량인 벌금 300만원 보다 무거운 실형이 선고되는 일은 이례적”이라며 “법원이 성범죄 엄단 의지를 이번 판례를 통해 밝힌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최근 울산지법 형사11부(부장 박주영)는 10여 년 전인 지난 2008년 봄부터 고종사촌 여동생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B(26)씨에게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 재판부 역시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해자는 대체로 분명하고 일관되게 범죄 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지난 16일에도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인정한 또 하나의 판결이 나오면서 법리가 굳어지는 추세다. 이날 대법원 3부는 지적장애 2급인 17살 소녀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성폭행한 목사 C(51)씨에게 징역 4년 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진술 내용이 일관성 있고 명확한 경우 지적장애가 있더라도 진술 신빙성을 인정하는 법리는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단순 성추행-상습 성추행-성폭행 구별해야
다만 “곰탕집 사건에서 보듯 짧은 순간 이뤄지는 단순 성추행에 있어서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판례 태도가 옳은지는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은밀한 장소에서 발생하는 성범죄 특성상 피해자 진술밖에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추행이든 성폭행이든 진술 증거가 거짓이 아님은 수사를 비롯해 1·2심 재판부를 거치면서 다각도로 검증 절차를 밟게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