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잡을 '잠입수사', 6개월째 제자리 걸음

시민단체, 잠입수사 빠른 입법화 촉구
디지털 성범죄 음성화되며 '위장수사' 필요성↑
정부, 4월 '잠입수사 도입' 발표…법안 여전히 계류
  • 등록 2020-11-10 오후 4:07:50

    수정 2020-11-10 오후 9:49:11

[이데일리 공지유 기자] ‘n번방’, ‘웰컴 투 비디오’와 같이 디지털 성범죄가 점점 음지로 숨어들자 정부는 잠입수사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나섰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갈수록 은밀하게 이뤄지는 디지털 성범죄를 적발하기 위해 민간단체의 모니터링을 통한 ‘간접 수사’에 기댈 게 아니라 하루빨리 경찰의 위장수사에 대한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민들이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디지털 성범죄 모니터링 민간에만 의존”…입법화 목소리↑

여성단체 ‘리셋’은 지난 9일 “언제까지고 공권력 대신 일반 시민 단체에게 범죄 감시의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다”며 디지털 성범죄의 완전 근절을 위해 수사기관의 위장·잠입과 범죄 감시를 용이하게 하는 함정수사 입법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디지털 성범죄는 텔레그램이나 다크웹 등 폐쇄적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조직적으로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배경 탓에 민간 단체들이 범죄 탐지를 위해 직접 해당 SNS에 잠입하는 모니터링을 통해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많아졌다. 리셋 역시 ‘n번방 사건’ 초기 텔레그램 성범죄를 알리기 시작한 단체로, 성착취·불법촬영물에 대한 지속적 모니터링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 현장 증거를 수집하고 신고하는 활동을 이어왔다.

다만 제대로 된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민간 단체들의 모니터링에만 기대는 방식의 수사가 이뤄지며 활동가들이 일상에 대한 위협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리셋은 “현재 대부분 모니터링과 채증은 민간이 만든 시민단체에서 시행되고 있다”며 “많은 활동가들이 모니터링 과정에서 신상 노출로 인한 위협, 협박의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경찰이 위장·잠입수사를 진행한다면 더 많은 범죄자를 제대로 검거하고 피해자에게도 공식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며 “(관련 법률을) 조속히 입법화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부 ‘대책 마련’ 반년 됐는데…관련 법안은 계류 중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정부는 지난 4월 경찰 등 수사기관이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 잠입수사를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적 노력은 아직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국회에서는 수사관의 잠입수사에 대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됐지만, 상임위에서조차 논의가 되지 않고 있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사법경찰관이 신분을 위장해 범죄행위의 증거 등을 획득하는 위장·잠입수사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8월 4일 잠입수사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지난 9월 16일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디지털 성범죄 잠입수사 법제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국민의힘 성폭력특위에서 또 다른 아청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하며 아청법안 전체가 본회의에 부의되지 않고 계류됐다.

법안을 발의한 한 의원실 관계자는 “잠입수사 법제화와 관해 법무부와의 협의 등으로 법안이 계류됐다”며 “이달 말 열리는 법안심사소위에서 다시 논의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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