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출신 총리 상상 못했다, 韓서도 北출신 대통령 나올수도"

세계경제연구원 주최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 대사 강연
메르켈 총리, 가우스 대통령 동독 출신 총리·대통령
동방정책. "자유를 돈으로 사냐"는 비판 있었지만 통일초석 돼
"출혈에 가까운 통일비용 있었다…통일 무조건적인 축복 아냐"
  • 등록 2020-05-28 오후 2:56:14

    수정 2020-05-29 오전 5:49:45

△앙젤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주년이 되는 201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에 추모를 하고 있다.[사진=afp제공]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독일 역시 동독 출신 대통령이나 총리를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대사는 28일 세계경제연구원이 주최한 조찬강연회에서 독일 통일의 가장 큰 성과로 ‘정치적 통일’을 꼽았다. 2005년 총리직에 올라 총리 4연임 중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독일 역사상 최초 동독 출신(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지만 생후 2개월 때 동독 이주) 총리이고 전임 대통령인 요하임 가우크 역시 동독 지역인 로스토크 출신이다.

물론 동독 출신이라는 것이 공산주의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우크 전 대통령은 반공 시민운동가이자 성직자 출신이고, 메르켈 총리 역시 동독의 민주화 단체에서 활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독일 정부의 수장으로서 지금까지도 존경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독일은 개인의 출신 지역보다 개인의 성향, 가치관, 능력에 주목할 정도로 정치적·정서적으로 통합돼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독일 통일은 동독 공직자의 ‘말실수’가 발단이다. 1989년 11월 서독과 동독간의 여행 자유화를 발표하던 샤보프스티키 당시 동독 공보담당 정치국원이 “이 조치는 언제부터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 당장”이라고 말하자 생중계를 지켜보던 동베를린 주민들이 말 그대로 “당장” 국경을 열어달라고 요구했고 이를 계기로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다만 아우어 대사는 이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은 ‘실수’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이전부터 동·서독 통일 분위기는 상당히 무르익어 있었다는 것이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동방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동독정부를 정식 국가로 존중하면서도 동독과 서독은 ‘1민족 2국가’로 서로 외국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이 체결된 후 동독 반정부 정치범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35억마르크를 지불하고 도로 사용료 등의 명목으로 25억마르크를 썼다.

아우어 대사는 “이런 서독 정부의 방식을 두고 ‘프라이카우프’(독일어로 ‘자유’를 의미하는 프라이하이트와 ‘구매’를 의미하는 카우프의 합성어), 자유를 돈을 주고 산다는 비판도 일었지만, 이 덕분에 동독과 서독의 인적 교류가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한해 인적교류는 100만~170만명에 달했고 7000만명이 전화통화를 했다. 동독 인구 90%는 서독 라디오를 청취할 수 있었고 일부는 불법임에도 텔레비전 방송도 봤다. 동독 주민들은 월요일마다 베를린 거리로 나와 권리와 자유를 돌려달라고 시위를 벌였다.

국제정세도 유리하게 돌아갔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령 공산당 서기장이 ‘브레즈네프 독트린’(공산주의 진영에 속한 나라가 위협을 받으면 이를 사회주의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다른 사회주의 국가가 개입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으로 구소련이 공산주의 진영 국가 문제에 무력 개입하는 근거로 활용됐다)을 폐기하고 냉전시대의 막을 내린 것이다.

아우어 대사는 “한국과 독일의 큰 차이점은 독일은 전쟁가해국으로서 분단에 책임이 있지만, 한국은 피해국가라는 것”이라며 “독일이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 통일독일이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정말 중요했다”고 돌이켰다.

아우어 대사는 한국이 전쟁피해국이라는 점에서 주변국들의 이해관계에 앞서는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북한 주민들이 진정으로 통일을 요구한다면 다른 국가는 이를 막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문제는 동독주민과는 달리 북한 주민들은 외부와 단절돼 있다는 것이다. 아우어 대사는 “긴장을 완화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일관되게 이를 추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며 “민간인 교류가 있을 때, 우리는 함께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비무장지대(DMZ) 등에서라도 융통성 있는 교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런 위험성을 알기에 인적 교류를 중단시킨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통일이 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체제의 전환은 동독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와 전 주민의 80%가 실업자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독일 정부는 조업시간을 단축하는 강수까지 동원해 고용률을 유지하고 고용보험, 실업보험 등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엄청난 비용을 썼다. 생산성도, 경제력도 엄격한 차이가 있는 양 지역의 통화를 1 대 1로 교환하는 것은 통화가치 하락과 엄청난 인플레를 가져왔다. 이 시기 독일은 ‘유럽의 환자’였다.

아우어 대사는 “40년간 출혈에 가까운 지출을 독일 정부가 감내해야만 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통일이 개개인의 생활에 바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통일이 무조건적인 축복도, 저절로 굴러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모두가 공유하고 각오해야 비로소 통일은 성공적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 대사가 28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독일 통일 30년의 경험 : 교훈과 정책적 시사점’ 조찬강연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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