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통화국 된다"는 이재명…SDR통화와 헷갈렸나?[궁즉답]

IMF SDR 편입통화와 기축통화 엄연히 다른데
원화, 전세계 외환보유액 통화비중 산출 어려울 정도
무역거래 사용 비중도 추정 안돼…태국 바트보다 낮아
IMF SDR 편입 가능성도 낮아…SDR 쿼터 16위 수준
신용등급 강등된 美처럼…기축통화국도 재정건전성은 숙제
  • 등록 2022-02-22 오후 3:36:38

    수정 2022-02-22 오후 9: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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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때 아닌 ‘기축통화국’ 논란이 거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열린 토론에서 “우리가 곧 기축통화국으로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히면서 시작된 논란이다. 나라 빚은 ‘좋은 빚’이라며 대통령에 당선되면 국채를 대거 발행하겠다는 이 후보의 공약에 재정건전성 논란 등 비판이 쏟아지자 이에 대한 반론으로 ‘기축통화국’을 거론했다. 기축통화국이 되면 우리나라가 국채를 마구 찍어도 국채를 사줄 외국인들이 많아서 나라 빚을 늘려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란 게 이 후보가 말한 배경일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MBC 미디어센터 공개홀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 초청 1차 토론회에서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가 기축통화국이 될 수 있을까. 기축통화국은 누가 지정을 해주는 것일까. 논란이 되자 더불어민주당 측은 이 후보의 발언은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13일 발표한 ‘원화의 기축통화 편입 추진 검토 필요성’ 자료를 근거로 한다고 했다. 문제는 이 보고서가 기축통화를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편입 통화와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잘못된 보고서를 잘못 인용한 결과다.

“기축통화는 누가 정해주지 않아요”…믿음의 산물일 뿐

기축통화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통화로 정의되지만 어느 통화가 기축통화인지는 그때 그때 바라보는 사람마다 다르다. 달러화만 기축통화일지, 달러·유로화까지가 기축통화일지, 엔화까지 기축통화로 봐야할지 똑 부러지게 정의되지 않는다.

*작년 3분기말 기준 출처: 국제통화기금(IMF)


어느 통화가 기축통화인지 추정해 볼 수 있는 데이터가 있긴 하다. 전 세계 중앙은행이 쌓고 있는 외환보유액의 구성을 보면 된다. 나라가 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변제 가능한 통화로 어떤 통화를 보유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IMF에 따르면 작년 9월 말 전 세계 외환보유액의 55.2%는 달러화가 점유하고 있다. 유로화(19.1%), 엔화(5.4%), 파운드화(4.5%) 순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반드시 기축통화라고 할 수 없다. 유럽에서 전쟁이 나게 될 경우 전 세계인에서 유로화를 팔게 될 텐데 그때는 기축통화로 달러화와 금만 남을 수도 있다. 원화는 기타 통화에 들어가 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얼마를 차지하는 지 추정하기 조차 어려운 수준이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통화라는 기준으로 살펴봐도 원화는 그 위치에 있지 않다. 국제은행 간 통신협회(SWIFT)가 집계한 작년 한 해 무역 거래 등에 사용된 통화의 비중을 살펴보면 달러화가 40.5%, 유로화가 36.7%, 파운드화가 5.9%에 달했다. 우리나라 원화는 태국 바트화(0.7%)보다 거래 비중이 낮아 순위권 밖에 있었다. 2년 연속 세계 경제 규모 10위를 기록했다고 해도 원화가 거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전경련에선 IMF SDR 통화바스켓 편입 통화를 기축통화라고 했지만 이 역시 한참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 2015년 11월 IMF는 중국 위안화를 SDR에 편입했지만 위안화를 기축통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2.5%에 불과하다. 세계 경제 2위인데도 위안화 사용 비중 역시 2.7%로 4위 수준이다.

IMF SDR 편입 가능성 낮지만…편입되더라도 기축통화 아냐

출처: 국제은행간 통신협회(SWIFT)


원화가 기축통화가 될 수는 없지만 IMF SDR 편입통화가 될 수 있을까. IMF SDR은 IMF가 1969년 브레튼우즈 체제(금본위제)의 고정환율제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달러 등 준비통화에 대한 교환권을 의미한다. SDR은 달러, 유로, 위안, 엔, 파운드 등 5개 통화로 구성된다. IMF는 190여개 회원국에게 SDR 지분을 부여하고 회원국이 외환위기 등 달러 유동성이 부족할 때 담보 없이 달러를 인출할 수 있도록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SDR 지분이 높을수록 IMF 내에서의 발언권도 커지는데 우리나라는 작년 8월 23일 기준으로 SDR 지분율 순위가 16번째로 그리 높지 않다. IMF에서 발언권이 센 나라는 미국, 일본, 중국, 독일, 프랑스 순이다.

IMF SDR에 편입되기 위해선 수출 규모 세계 5위권, 자유로운 통화 사용을 조건으로 하지만 위안화 사례에서 보듯이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실제로 IMF가 위안화를 SDR에 편입한 후 IMF의 기준이 자의적이란 비판을 받았다. 정치적 영향력 등이 더 크게 좌우했다는 얘기다. 전경련 설명대로 우리나라가 수출 규모 세계 5위(2016~2020년 평균 수출액)에 속하고 2019년 세계 외환상품시장에서 원화 거래 비중이 2.0%로 위안화 SDR 편입 전인 2013년 위안화 거래 비중(2.0%)과 비슷하다고 해서 원화가 SDR에 편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 전경련 역시 원화가 SDR에 편입되면 각종 이점이 많기 때문에 정부가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냈다고 보는 것이 적정하다.

다만 더 중요한 것은 원화가 SDR 통화에 편입되고 나아가 이 후보의 말처럼 기축통화가 된다고 해도 나라 빚 증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는 없다는 점이다. 명실상부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찍는 미국도 나라 빚이 늘 도마에 오른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2011년 재정적자를 이유로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했고 피치는 2020년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추기도 했다.

전경련도 22일 논란이 일자 긴급 자료를 내고 “원화가 SDR에 편입돼도 국가 재정건전성 문제는 거시 경제 안정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며 “국제적으로 안전자산으로 인식돼야만 국제 지급, 결제 기능을 갖춘 명실상부한 기축통화가 될 수 있어 경제 펀더멘털 유지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가 경제 교과서에 등장할 법한 기축통화조차 제대로 몰랐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문제이고, 알고도 그 사실들을 왜곡했다면 일반 국민들의 상식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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