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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어진 연방준비제도(Fed)의 전례 없는 규모의 돈 풀기가 막을 내릴 조짐이다. 연준이 연내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을 강하게 시사하면서다.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의결권을 가진 인사 중 과반은 이미 ‘매파(통화 긴축 선호)’로 기운 상태다.
다만 추후 긴축 속도는 가파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제2의 테이퍼 탠트럼(긴축 발작)을 막아야 하는 데다 델타 변이 확산 탓에 경기 고점론까지 불거지고 있어서다.
매파 쪽 기운 FOMC 위원들
18일(현지시간) 이데일리가 올해 FOMC에서 의결권을 가진 11명의 위원의 입장을 분석해 보니, 절반 이상은 매파로 기운 것으로 나타났다.
연준 이사진 6명(정원 7명 중 현재 1명 공석) 가운데 랜달 퀄스 부의장,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조기 테이퍼링을 주장하고 있는 인사다. 특히 월러 이사는 최근 CNBC와 인터뷰에서 “(고용 증가 규모에 따라) 이르면 올해 10월부터 테이퍼링을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둘은 중립 혹은 ‘비둘기(통화 완화 선호)’ 성향으로 평가 받았으나, 최근에는 매로 돌아섰다. 리처드 클라리다 부의장 역시 “현재 인플레이션은 상방 리스크가 있다”고 보는 인사다.
다만 올해 의결권을 가진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은 매파 성향이 다분하다. 총 5명 중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 토머스 바킨 리치몬드 연은 총재, 매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는 조기 긴축을 주장하고 있다. 찰스 에반스 시카고 연은 총재도 근래 “미국 경제가 궤도에 올랐다”고 언급하는 등 테이퍼링에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은 총재 정도만 별다른 공개 코멘트를 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는 곧 중립 혹은 비둘기 성향의 파월 의장이 마음만 먹는다면 앞으로 언제든 테이퍼링을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기류는 이날 연준이 공개한 7월 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다수 FOMC 위원들은 “경제가 광범위하게 회복할 경우 올해 안에 자산 매입 속도를 줄이는 게 적절하다”며 조기 테이퍼링을 주장했다. 내년 초까지 기다려 보자는 입장은 소수였다.
다수 위원들은 또 “(미국의) 경제가 연준의 인플레이션 목표에 다다랐다”고 했다.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5.4%로 연준 목표치(2.0%)를 한참 상회했다. 다른 물가 지표 역시 과열을 가리키고 있다.
고용 문제는 약간 달랐다. 다수 위원들은 “최대 고용을 향한 ‘실질적인 추가 진전’이 아직은 충족되지 않았다”면서도 “올해 안에는 달성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연준이 주시하는 고용 보고서에서 7월 비농업 신규 일자리는 94만3000명 증가했다. 시장 예상치를 상회하는, 긴축을 시작할 만한 고용 지표라는 평가다. 월가 일각에서는 이미 11월 테이퍼링설이 돌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월 테이퍼링을 시작해 내년 중반께 종료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최대 관심사는 테이퍼링이 시장에 미칠 여파다. 2013년의 테이퍼 탠트럼 공포가 생생해서다. 당시 연준이 갑작스럽게 테이퍼링 의사를 밝히면서 금리가 급등하고 주가가 내려가는 등 시장에 충격을 줬다. 이 때문에 연준이 금융시장 영향을 지켜보면서 ‘신중한 긴축’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날 의사록에 따르면 FOMC 위원들은 “테이퍼링 시기와 기준금리 인상은 어떠한 연관성도 없다는 점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테이퍼링이 끝나기 전에 기준금리를 올리는 건 어렵다는 입장을 다시 천명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내년 하반기는 돼야 기준금리가 화두로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델타 변이 확산 역시 변수다. 또다른 팬데믹이 경기 둔화를 부를 수 있는 탓이다. 심지어 일부 위원들은 “코로나19 신규 감염자가 계속 증가해 경제 성장을 저해할 경우 인플레이션은 다시 하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플레이션 만성화를 사전에 막고자 테이퍼링을 서둘러야 한다는 논리와 배치되는 것인데, 그만큼 FOMC 내부에서 델타 변이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있었다는 뜻이다.
미국 투자리서치회사인 CFRA의 샘 스토발 수석투자전략가는 “인플레이션은 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테이퍼 탠트럼 같은 충격은 재연되지 않을 것으로 점쳤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주가 수준이 역대 최고치인 만큼 조정 압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날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1.07% 내린 4400.27에 마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3800)와 도이치방크(3950), 씨티(4000), 모건스탠리(4225), RBC(4325), 바클레이즈(4400), UBS(4400) 등은 연말 S&P 전망치를 현재보다 낮게 제시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