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112 신고' 출동해보니… 입 모양으로 '살려달라' 울먹인 女

  • 등록 2023-01-06 오후 3:28:23

    수정 2023-01-06 오후 3:28:23

[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긴급신고 112입니다” “……”

지난 5일 오전 8시 7분께 인천경찰청 112 치안종합상황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전화를 건 신고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기사와 무관함 (사진=경찰 블로그)
“경찰관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숫자 버튼 두 번 눌러주세요”

상황실 근무자인 김호성 경위는 직감적으로 위급 상황임을 의심했다고 한다. 이에 김 경위는 지난해부터 시행한 ‘보이는 112’ 시스템을 통해 신고자의 상황을 파악하려고 시도했다.

이는 음성 대화 없이도 경찰관의 안내에 따라 숫자 버튼을 누르면 신고가 이뤄지는 시스템이다. 경찰이 신고 상황임을 인지하고 신고자에게 ‘보이는 112’ 접속 링크를 발송하면, 신고자의 위치 확인, 영상 전송, 경찰과의 비밀 채팅 등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신고자는 여전히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숫자 버튼을 누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때 수화기 너머로 남녀의 대화가 미세하게 들려왔다. 소리는 작았지만, 분명 남녀가 싸우는 듯했다.

이에 김 경위는 긴급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위치추적시스템 LBS(Location Based Service)을 가동한 뒤 관할 경찰서에 ‘코드1’ 지령을 내렸다. 코드1은 생명이나 신체 위험이 임박했거나 진행 중일 때 발령된다.

지령을 받은 지구대 경찰관들은 위치추적으로 확보한 인천의 오피스텔로 출동하며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자 신고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신고자는 20대 여성 A씨였는데, 당시 그는 경찰에 “잘못 눌렀다”며 “신고를 취소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울먹이는 A씨의 목소리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안전한지 직접 보고 확인해야 한다”라며 설득했고, 3분여 만에 신속히 현장에 도착했다. 오피스텔 초인종을 누르자 20대 남성 B씨가 문을 열었다. B씨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행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잠시 뒤 방안에서 울던 A씨가 현관문 쪽으로 나왔고 B씨가 알아차리지 못하게끔 경찰관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살려주세요’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상황을 인지한 경찰관들은 A씨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피해 사실 등을 확인하고 현장에서 B씨를 체포했다.

조사 결과 B씨는 전 여자친구인 A씨를 찾아가 얼굴을 때리고 흉기로 한 차례 찔러 다치게 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B씨에 대해 특수상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한편, A씨 집 주변 순찰을 강화하고 치료비와 심리상담을 지원하는 등 적극 조치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같은 무응답 신고를 접수하면 사소한 단서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라며 “시민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험과 직결된 긴급상황으로 판단될 시 자동위치추적 및 긴급코드 발령 등 대응 매뉴얼을 갖춰 발 빠르게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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