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수빈 이소현 기자] “투표 보조인이 필요합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 1일 오전 10시15분. 발달장애인 이종원(31)씨가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 내 작은 경로당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신분증을 내밀면서 외쳤다. ‘투표보조인 도움을 받고 싶다’는 이씨의 큰소리에 투표소 내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러자 곧장 투표소에서 거리두기 안내를 하던 투표관리관이 다가와 “안 보이세요? 안 들리는 분이세요?”라고 이씨의 신체장애에 관해 물었다.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열린 1일 오전, 서울 성북구 돈암동의 투표소에서 발달장애인 이종원씨(왼쪽)와 투표보조인 김하은씨(오른쪽)가 기표소에서 함께 투표용지를 살펴보고 있다.(사진=이수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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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투표 보조인으로 현장에 함께한 장애인단체 피플퍼스트의 김하은 활동가는 “발달장애가 있다”고 대신 답변했다. 그러자 투표관리관은 “그럼 혼자 기표할 수 있나, 왜 투표 보조인이 필요하나”라고 다시 물었다. 이에 김씨는 “어떤 후보가 나왔고, 무엇에 투표하는 건지 설명을 듣고 싶어 한다”라고 재차 투표 보조인이 필요함을 설명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엔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해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해 투표를 보조하게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판단이 지역선관위와 투표소마다 제각각이라 발달장애인은 투표 보조 신청을 거부당하기 일쑤다.
비장애인은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신분증과 등재번호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지만, 발달장애인인 이씨에게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씨가 투표보조원이 필요하다고 말한 뒤 대기 줄은 길게 늘어졌다.
이날 김하은 활동가는 신분증을 제출하고, 이씨와의 관계를 설명한 후 10여분 만에 투표 보조인 동행을 허가받고 함께 기표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김씨가 “지금은 서울시장, 교육감, 성북구청장을 뽑을 거예요. 칸 안에 알맞게 찍어야 해요”라며 투표용지마다 어떤 선출직을 뽑는지, 후보는 누가 있는지를 설명했고 투표 도움을 받은 이씨는 3분 만에 첫 번째 투표를 마무리했다.
3장의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은 이씨는 다시 4장의 투표용지를 더 받았다. 4분 뒤 두 번째 투표를 마친 이씨는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그러자 참관인과 투표관리관, 투표보조인도 모두 손뼉을 치며 호응했다. 투표 전후로 긴장과 설렘을 보였던 이씨는 무사히 투표를 마친 뒤 “아싸”를 외치며 투표장을 나섰다. 그는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 1일 오전 서울 성북구 돈암동 투표소에서 발달장애인 이종원씨가 투표함에 3장의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사진=이수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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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보조인으로 동행한 김씨는 “오늘처럼 발달장애인 투표가 무리 없이 진행되는 건 매우 이례적”이라며 “선거장소마다, 선관위 직원에 따라서 갈등도 있고 제지당하다가 못하는 때도 있다”고 했다. 실제 기표소에 두 명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끝까지 제지해 투표를 거부당하기도 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고 교육을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들이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선 공적인 투표 보조 지원, 그림 투표용지 제작, 알기 쉬운 선거자료, 모의투표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