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몸에 부착해 블랙박스 역할을 하는 소형카메라 일명 ‘보디캠’이 우리 생활 전반에 파고들고 있다. 통상 보디캠은 경찰 등이 증거 수집 등의 용도로 쓰고 있지만, 일반인들도 일하면서 ‘귀책 사유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다. 특히 배달원, 운전기사, 아파트 경비원 등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폭행·폭언·인격모독 등 ‘갑질’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들에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지만, 일각에선 사생활 침해 우려와 함께 우리 사회가 ‘감시사회’로 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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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기사 A씨는 지난달 10일 밤 대리운전 도중 남자 손님 B씨, 여자 손님 C씨와 비용 지급 문제로 시비가 붙었다. A씨에 현금을 주기로 하고 불렀지만 B·C씨가 현금이 없어 계좌이체를 하는 과정에서 말다툼이 번졌다. 급기야 B·C씨는 ‘기분이 나쁘다’며 A씨에게 반말과 욕설을 하며 폭력을 행사했고, A씨가 경찰에 신고하자 C씨는 스스로 주차장 벽과 차에 머리를 찧는 등 자해를 하고는 “쟤가 나를 때렸다”며 되레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보디캠은 아파트 경비원의 ‘보호’ 기구로도 쓰이는 중이다. 몇해 전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던 이모씨가 입주민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후 일부 아파트에서 경비원에게 보디캠을 착용하게 해 화제가 됐다.
보디캠은 CCTV 등이 없는 사각지대에서 시비가 일어날 경우에도 사건을 고스란히 담아낸다는 점에서 배달원·경비원 등의 안전 보호에 긍정적이란 평가가 있지만, 사생활을 침해할 소지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특정 다수가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누군가에 촬영될 수 있어서다.
정지영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보디캠이 신변보호 용도로 필요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도 간과할 순 없다”면서 “사회 구성원 간 신뢰가 부족하고 견제가 늘면서 감시가 만연해지는 우리 사회의 단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동형 영상정보처리기기에 대한 기준 마련 등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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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보디캠을 먼저 사용하기 시작한 건 경찰이다. 경찰청은 2015년부터 사건 현장에서 발생하는 위법 행위 등을 기록하기 위해 보디캠 착용을 시범 운영했는데, 예산 부족과 개인정보 보호 문제 등으로 정식 도입은 흐지부지된 상태다. 이 때문에 일선 경찰관은 사비를 들여 개인장비로 쓰는 중이다.
경찰의 보디캠은 범죄 증거수집을 넘어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따지는 수단으로도 쓰일 수 있다. 인천층간소음흉기난동사건에서도 현장을 이탈한 여경이 착용하고 있던 보디캠이 ‘부실 대응’ 논란을 가를 열쇠였지만, 어쩐 이유에서인지 당시 사건 녹화 영상은 없었다. 이 때문에 피해자 측에선 “책임을 지우려 고의로 영상을 삭제했다”고 주장한다. 당초 목적과 달리 보디캠이 경찰 스스로를 묶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단 얘기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보디캠은 경찰의 물리력 사용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급박한 현장을 확인하는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다”면서 “일반인과 같은 자기방어 목적을 넘어 공적 업무 집행과정을 투명하게 할 수 있도록 경찰 내부에서 공식 장비로 채택하기 위한 재검토에 착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