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원룸 탈 쓴 고시원’ 한숨짓는 20·30대

  • 등록 2014-01-12 오후 3:47:33

    수정 2014-01-12 오후 5:43:36

[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서울을 처음 찾은 삼천포.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그에겐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당장 하숙집이 있는 신촌행 지하철 타기부터가 쉽지 않다. 시청역에서 지하철 2호선으로 갈아타는 법도 알 리 없다. 서울역에서 신촌까지 넉넉 잡아도 20분이면 가는 거리를 삼천포는 10시간을 헤맨 끝에 겨우 하숙집에 도착한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나오는 장면 중 하나다. 이 장면에서 ‘서울 이곳은’이란 곡이 배경으로 흘러나온다.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화려한 유혹 속에서 웃고 있지만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해…’.

노래 가사와 삼천포의 얼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부푼 기대를 안고 서울로 상경했지만 서울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삼천포는 긴 한숨을 내쉰다.

시계추를 2014년으로 돌려보자. 서울 생활이 팍팍하긴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게 20·30대 젊은층의 주거 문제다. 대학생·취직 준비생이거나 직장에 다니는 1인 가구에겐 더욱 그렇다. 정부는 이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2011년부터 도심을 중심으로 도시형 생활주택을 대거 지었다. 1인 가구 전용 원룸이다. 최근엔 월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저리의 전세자금 대출도 확대해줬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는 제도의 취지가 엇나가고 있다. 집주인들이 수익을 더 많이 얻기 위해 고시원으로 지은 뒤 나중에 원룸으로 불법 용도 변경하는 경우가 허다해서다. 대표적인 대학가인 서울 신림동은 이렇게 불법으로 용도 변경한 원룸이 전체의 절반을 웃돌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문제는 이 같은 피해가 고스란히 세입자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고시원은 건축법상 주택이 아니어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주거 환경은 좋을 리 만무하다.

최근 들어선 이런 불법 용도 변경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부가 원룸 수를 조절하기 위해 건축 규제를 대폭 강화했는데, 건축주들이 이를 피하려고 처음부터 고시원으로 짓는 사례가 부쩍 많아진 것이다. 정부 단속이 거의 이뤄지지 않다 보니 건축주들도 거리낌이 없다. 애초 정부가 제도만 만들어 놓고 현장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다. 제도 취지만 살려도 주거 문제 때문에 한숨짓는 젊은이들이 조금이라도 줄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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