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곡사포는 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야전포다. 장애물 뒤에 있는 적을 공격하거나 적 후방을 교란시킬 때 사용한다. 직사포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곡사포는 보통 트럭이 견인해 이동한 후 진지에서 방열한다. 방열은 사격을 위해 위치를 선정하고 사격자세를 갖춘다는 의미다. 대형 헬기나 수송기에도 탑재가 가능해 자주포나 다연장 로켓포의 접근이 어려운 험지에서도 활약할 수 있다.
우리 육군이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견인 곡사포는 KH-179다. KH는 한국형 곡사포를 의미하는 ‘Korea Howizer’의 줄임말이다. 1은 최초 혹은 시작이라는 뜻이며 79는 1979년 개발에 착수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사실 우리나라는 오랜 화포의 역사를 갖고 있다. 고려시대 말 최무선이 화약을 개발하는데 성공한 이후 1377년 국가공인 화약·호기 제조기구인 ‘화통도감’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명종 때인 1555년에는 무게 300kg의 구경 130mm ‘천자총통’을 제작한바 있다. 현재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된 이 ‘가정을표명천자총통’은 보물 제647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조선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손으로 만든 화포는 사실상 없다. 우리의 포병화력은 대부분 미국의 군사 원조였으며 베트남전 참전 대가로 인수한 장비들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사거리였다. 1976년 당시 서유럽 국가들은 이미 사거리 30km급의 곡사포 개발을 완료하는 단계였다. 하지만 우리 군의 화포 중 20km 이상 사거리를 가진 전력은 군사원조로 들여온 175mm 자주평사포 뿐이었다. 평사포로는 산 너머 멀리 있는 적을 공격할 수 없다. 북한의 화력에 비해 수적인 면에서도 열세였으며 우리 포병의 90%가 적 사정권 안에 있었다.
이에 ADD는 기존 미군의 155mm 견인곡사포 M114A2의 사거리 연장을 위해 미국에 자문을 구했지만 거절당했다. 당시 미국은 M198을 개발해 놓은 상태라 한국이 이를 구매하길 원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영국과 독일 등 유럽 기술자료를 입수해 국내 개발을 시도하자 1977년 미국이 돌연 M114A2의 사거리를 30km까지 늘리는 사업을 진행하자고 제의했다. 당시 240만 달러에 달하는 기술료도 문제였지만 시제품 제작과 시험평가를 미국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미국 측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향후 지적소유권 분쟁 우려 등이 있어서다.
|
이렇게 시작된 것이 155mm 견인곡사포 KH-179 개발 사업이다. 한 번도 독자적으로 화포를 설계해 보지 않은 우리 연구진은 기존 M114의 포신(포의 몸통) 길이 3.62m 보다 더 긴 7.01m로 설계했다. 일반적으로 동일 구경에서는 포신 길이가 길수록 정확도와 사거리가 향상된다.
우리 연구진은 이를 3년여 만인 1982년 개발에 성공했다. 특히 포신의 길이를 늘렸는데도 경량화를 달성해 총 중량 6890kg을 유지했다. 무게가 7톤 이하이기 때문에 CH-47 수송헬기나 C-130 수송기로 이동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KH-179의 발사 속도는 최대 분당 4발, 지속사격시 분당 2발이다. 미 M198과 같은 성능이다. 사각지역은 좌 23.5도, 우 25.2도다. 간접 사격의 경우 좌측에 장착된 4배율의 파노라마식 조준경을 사용한다. 직접 사격은 3.5배율의 옐로우 조준경을 사용한다. 5톤 트럭에 견인돼 이동한다. 사격에 필요한 인원 5명이지만 보통 10여명 안팎이 한 조가 돼 운용한다.
|
그러나 육군이 K-9 개발 이후에도 아직까지 KH-179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가격대비 효율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육군 포병화력 중 30km 이상 사거리를 갖는 장비는 대당 50억~60억원에 달하는 K-9자주포와 K-55의 개량형인 K-55A1 자주포(대당 30억~40억원) 정도다. 대당 1억2000만원 수준의 KH-179가 여전히 활용되고 있는 이유다.
게다가 KH-179는 이란과 인도네시아 등에도 수출된 ‘명품’이다. 이란은 이라크와의 전쟁 당시 KH-179를 활용해 차륜형 자주포를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다. 인도네시아는 18문의 KH-179를 도입하면서 기아자동차의 5톤 트럭인 K-711도 곡사포 견인용으로 함께 수입한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