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불안에 다치면 나락'…'안녕 못한' 무용수

부상 고위험군 '보험사 가입 기피'
생명력 짧고 전문단체 적어…은퇴 후 막막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 등록 2014-02-24 오전 9:52:00

    수정 2014-02-24 오전 9:52:00

[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보험사기로 고소당할 수도 있다.” 20대 여자 무용수 A씨는 상해보험에 가입했다가 두 달 만에 강제로 해지를 당했다. 직업이 문제가 됐다. 무용수는 부상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민간 상해보험 가입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A씨가 무용수란 걸 밝히지 않아 보험가입을 유지해줄 수 없다는 게 보험사가 통보한 해지 사유다. A씨는 이미 낸 두 달 치 보험료도 돌려받지 못했다. 고소당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듣자 겁이 덜컥 났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이하 센터)에 접수된 상담 사례다.

▲민간 활동 무용수 둘에 한 명은 월소득 100만원 안 돼

화려한 몸짓의 춤꾼들이 마주한 현실은 어두웠다. 무용수들이 ‘복지사각지대’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최근 발표한 ‘2013 전문무용수 실태조사’를 보면 무용수 중 계약직·프리랜서 등 비정규직 비율이 70%에 달한다. 이로 인해 직장을 통해 4대 사회보험인 산재보험에 가입한 무용수는 절반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6명꼴로 무용활동 중 병원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의 부상을 입은 걸로 조사됐는데도 사회보장은 물론 민간에서도 제대로 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센터는 예산 중 무용수들의 상해재활에 가장 많은 지출을 하고 있다. 국·공립을 포함해 60여개 무용단체와 무용수 147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밥벌이’도 어려웠다. 10명 중 3명(33.4%)은 월평균 100만원도 채 받지 못했다. 국·공립 소속이 아닌 무용수들은 더욱 심각했다. 2명 중 1명(47.6%)이 월평균소득 100만원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출연작품을 잡았다고 해서 꼭 사정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워낙 무용계가 어렵다 보니 출연료를 받지 않고 무대에 오르는 사례가 적잖아서다. 한 무용계 종사자는 “창작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극장 대관료와 스태프 비용 외에 무용수 출연료를 책정하지 못하고 공연을 올리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직업전환’ 안 돼 은퇴 후 더 암담

이로 인해 노후대책 마련은 가시밭길이다. 장승헌 춘천아트페스티벌 예술감독은 “유럽 무용수들은 월급뿐 아니라 소속단체에서 지원하는 퇴직연금이란 안전망이 있는데 우리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체력 등으로 생명력이 유독 짧은 예술인들이 무용수다. 40대 중반까지만 무대에 서도 ‘장수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런 특성 때문에 더욱 제2의 직업개발이 절실하다.

국립발레단장을 지낸 박인자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이사장은 “무용수들의 안정적인 생계유지를 위해 고정급을 줘 무용수들을 흡수할 수 있는 전문단체들이 많아져야 하고 전공을 활용한 직업개발 등이 더욱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무용수들을 위한 재활트레이너나 노인들을 위한 무용프로그램 지도 등이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2009년부터 국립발레단에 재활 트레이너로 새 인생을 살고 있는 발레리노 출신 고일안(40) 씨가 대표적인 예다.

그렇지만 직업을 새로 얻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성공사례도 드물다. 2007년 설립된 전문무용수지원센터를 통해 직업전환에 성공한 무용인들은 지난해까지 채 10명이 안 된다. 국내 무용인은 약 1만 5000명. 회원수가 700여명밖에 안 되는 센터도 문제지만, 직업전환에 대한 무용수들의 저항이 큰 탓도 한몫했다. 박호빈 댄스씨어터 까두 대표는 “젊어서 한우물만 파던 이들에게 마흔 넘어 직업을 바꾸라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무용수들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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