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Fi카페] '통큰치킨'의 부활을 아시나요?

모바일 시대 바뀐 대형마트 위상, '통큰치킨'에도 영향
  • 등록 2019-06-29 오전 11:34:24

    수정 2019-06-29 오후 12:00:38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지난 2010년 겨울 때 일입니다. 롯데마트에서 발표한 한 식품 메뉴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바로 ‘통큰치킨’입니다. KFC 패밀리세트 같은 동그란 큰 상자에 닭 한마리를 후라이드치킨으로 튀겨 넣은 제품이었습니다. 당시 가격은 5000원. 롯데마트의 엄청난 물류파워를 엿볼 수 있는 제품이었습니다.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이 그때 마리당 1만4000원, 1만5000원 정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파격에 파격을 더한 가격이었죠.

통큰치킨 (이데일리DB)
사실 그때도 후라이드치킨 5000원은 원가 계산으로도 쉽지 않은 가격이었습니다. 제아무리 롯데라도 밑지는 장사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산지 생닭을 농장주인이 직접 잡아 튀기면 모를까, 닭 가공비와 운반비, 인건비 등까지 합하면 5000원을 훌쩍 넘기 마련이긴 합니다.

그런 통큰치킨이 2010년 12월 8일 이후 발매 열흘도 안돼 중단됩니다. 직접적인 경쟁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프랜차이즈 치킨 본사들의 반발이 거세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마트 주변에 있는 대형 치킨 매장은 눈에 띄게 매출 하락이 있었다고 합니다. 닭을 튀기며 직접 배달하는 동네 치킨 사장님 눈에도 곱지는 않았죠.

지금은 롯데의 창고형 할인매장 ‘빅마켓’으로 바뀌었지만, 2010년 12월 9일 롯데마트 영등포점 앞으로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 본사 관계자들이 모입니다. 거세게 항의를 했고 일부 언론에서 이를 보도하면서 ‘골목상권 침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리고 나온 결정은 ‘판매중단’이었습니다. 논란을 일으켰지만 충분한 홍보 효과를 거둔데다, 동네상권 상인들이랑 대립각을 세우는 게 롯데마트 입장에서는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었겠죠.

2010년 12월 9일 당시 롯데마트 영등포점 앞에서 통큰치킨항의 시위를 하는 프랜차이즈업계 관계자들. (사진=김유성 기자)
통큰치킨이 중단되자 또다른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바로 치킨을 직접 사먹는 소비자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싸게 치킨을 먹는데 당신들이 무슨 상관이냐’부터 ‘그동안 치킨집들이 얼마나 비싸게 받은 거냐’라는 반응까지 나왔습니다. 치킨프랜차이즈 본사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손님을 빼앗긴다’보다는 ‘그동안 치킨을 비싸게 팔아왔다’라는 비난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통큰치킨이 올해 3월 부활합니다. 지난 9년간 이름과 가격이 약간 달랐을 뿐, 비슷한 류의 치킨 상품이 나오긴 했지만, ‘통큰치킨’이란 이름으로 나오기는 9년만이었죠. 9년만의 등장에 언론은 관심을 가졌지만, 의외로 분위기는 차분했습니다. 지난 13일 U20 월드컵 축구 결승전을 앞두고 또 일주일 한정 판매가 됐지만 큰 논란은 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간 8만마리나 팔렸지만,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의 ‘좌시하지 않겠다’ 정도였습니다. ‘생존권 투쟁’을 외치던 9년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입니다.

지난달 28일 모델들이 롯데마트 통큰치킨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롯데마트)
왜 그럴까요.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한 가지 더 언급해봅니다. ‘국민식빵’입니다. 신세계푸드가 생산하고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식빵입니다. 이번달 출시한 저렴한 식빵입니다.

신세계푸드는 뉴욕 등 ‘빵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 빵류 가격이 비싸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신세계푸드는 시내 베이커리 프랜차이즈에서 판매하는 식빵 가격 대비 3분의 2 가격으로 국민식빵을 팔았습니다. 덕분에 이마트 베이커리에서 팔리는 국민식빵은 오후 2시면 완판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조용한 히트 행진인 것이죠.

국민식빵을 판매하는 이마트 베이커리가 전국에 70개 정도이고, 하루 판매량이 200개 정도란 점을 고려하면 베이커리 시장에 큰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베이커리 업계의 특별한 반응은 없어 보입니다. 그 흔했던 ‘골목상권 침해’ 논란은 없는 듯 합니다.

이마트 베이커리에서 팔리는 국민식빵 (신세계푸드 제공)
10년 사이 바뀐 것은 무엇일까요. 롯데마트나 이마트가 동네 프랜차이즈 매장을 자극하지 않는 ‘조용한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게 가장 큰 요인으로 보이긴 합니다. 그보다도 더 큰 요인은 우리 국민들의 쇼핑 습관의 변화입니다. 지난 10년간 극적으로 변했죠.

롯데마트는 10년전 통큰치킨을 요란하게 광고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와 치열한 각축전을 멀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신문 속지를 보면 두개 면이 이들 마트 광고로 채워져 있었죠. 광고 내용의 요지는 ‘우리는 경쟁사보다 쌉니다’ 입니다.

이런 점에서 통큰치킨은 훌륭한 미끼상품이었습니다. 우리 국민 10명 중 9명은 한달에 한 번 정도 먹을 정도로 대중적인 메뉴인데다, 시중 치킨 가격이 비싸다는 소비자 불만도 있었죠. 마리 당 1000원 정도 손해를 본다고 해도, 통큰치킨 사러 온 고객들이 다른 물건을 사 준다면, 마트 입장에서도 손해볼 게 없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대형 마트에서 주로 쇼핑을 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다릅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 트렌드가 이미 많이 바뀌었다고 지적합니다. 우리나라 쇼핑시장의 중심이 온라인으로 옮겨갔고, 가족 단위도 1~2인 가족이 중심이 되면서, 굳이 대형마트에서 대량 구매를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죠. 대형마트를 찾지 않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러다보니 9년전 통큰치킨과 현재의 통큰치킨이 갖는 위상은 판이하게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통큰치킨의 역할도 달라졌습니다. 9년전에는 통큰치킨이 이마트나 홈플러스에 갈 고객들을 롯데마트로 끌어들일 유도책이었다면, 지금은 온라인으로 몰린 고객들이 롯데마트를 찾게 만드는 하나의 ‘매력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이마트의 국민식빵도 화제성 면에서 통큰치킨보다 덜 해도, 이런 맥락에서 팔리고 있는 것이죠.

이런 초특가 상품이 일견 효과는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온라인에 익숙해진 고객들이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야 할 절실한 이유는 아닌것이죠. 이은희 교수는 마트 공간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합니다. 초특가 상품 뿐만 아니라 서점, 맛집, 실내형 테마파크 등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확보해야한다는 것이죠. 의외로 서점이 집객효과가 있다고도 합니다.

시대는 바뀌기 마련입니다. 특히 모바일 산업은 대형마트들의 생존도 장담 못하게 만들 정도로 시장을 바꿔 놓았습니다. 대형마트도 특색있는 동네 매장과 동일 선상에서 경쟁해야하는 곳이 바로 모바일입니다. 통큰치킨 논란도 따지고 보면 시대가 만들어낸 한 표상인 것 같습니다. 그 표상을 읽고 대비하는 게 모바일 시대를 살아가는 한 벙법이겠죠. 특색을 가진 동네 매장들이 정답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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