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풍속화의 대가’ 단원 김홍도(1745~1806?)의 솜씨는 기록화에서도 남달랐다. 조선시대 궁중·관아를 중심으로 그려졌던 기록화는 행사 장면에 초점이 맞춰 그려져 일반 백성은 등장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김홍도는 달랐다. 1795년(정조19) 정조의 화성 현륭원 행차길을 그린 ‘화성원행도’, 정조의 수원능행을 그린 ‘수원능행도병풍’ 등의 기록화에서 행사 모습 외에 백성들의 모습도 화폭에 담았다.
특히 평안감사 부임을 환영하기 위해 세 곳에서 열린 연회장면을 그린 연작 그림 ‘평안감사향연도’를 김홍도의 기록화 가운데 최고로 친다. ‘연광정연회도’, ‘부벽루연회도’, ‘월야선유도’ 등 3폭으로 이뤄진 이 그림은 당시 평양성 백성들의 삶과 풍류를 마치 현장에서 직접 보는 듯 생동감 넘치게 전한다. 2500명이 넘는 등장인물의 각기 다른 표정들을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 ‘평안감사향연도’(사진=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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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오는 4월 4일까지 열리는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평안’에 가면 ‘평안감사향연도’를 만날 수 있다.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화려한 연회 장면이다. 대동강가의 2층 누각인 연광전에서는 청색 융복을 입은 평안 감사를 중심으로 화려한 연회가 펼쳐진다.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비녀와 장신구로 한껏 멋을 부린 평양 교방 기생들의 모습과 청색과 붉은색의 단령포를 입은 악공의 모습 등 화려한 채색에서 연회 분위기가 느껴진다.
대동문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대동문 앞에서부터 사방에 이르는 좌우 도로에는 각종 물품을 파는 저잣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분주히 오간다. 그 옆에 어린 아이를 업고 있는 아낙네와 개, 대동강 물을 길어 물지게를 멘 남성들과 물동이를 인 아낙네들, 술을 나르고 엿을 파는 아이, 왁자지껄한 구경꾼의 모습 등이 그림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가게에서 담뱃잎을 써는 장사꾼들의 모습은 마치 ‘단원풍속화첩’의 ‘담배썰기’ 그림과 흡사하다.
‘평안감사향연도’는 분명 이전까지 궁중·관아 기록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김홍도 이전에도 기록화에 백성이 등장한 적은 있지만, 백성의 역할은 단지 구경꾼이었다. 백성이 구경꾼으로 기록화에 등장한 첫 사례는 1719년 그려진 기해기사계첩(국보 제325호)이다. 기해기사계첩은 그해 4월 숙종이 기사(70세 이상 정2품 이상 중신 우대모임)경로잔치 참석을 기념해 남긴 글과 그림이다. 그림 속 백성들은 화면 상단 하단에 일렬로 서서 기로신들의 행렬을 바라보며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문동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장은 “인물들의 익살스럽고 재치있는 해학적 모습을 현장감있게 전달하는 것은 김홍도의 화풍이 생기기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며 “김홍도의 등장이후 19세기 한동안 기록화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 그림이 김홍도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부벽루연회도’ 화면 상단에 ‘단원사(檀園寫)’의 수결(서명)과 ‘홍도(弘道)’의 백문방인(인장)이 있는데, 수결과 인장이 김홍도의 풍속화첩에 있는 작품의 서체와 다르기 때문이다. 김홍도의 화풍을 따르는 그의 후학들이 그린 작품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 ‘평안감사향연도’ 모습 일부(사진=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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