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백화점 VIP 고객들 사이에서 프랑스 명품 샤넬 기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보복 소비 트렌드로 등장한 오픈런(Open Run·매장 문을 열자마자 달려가 구매하는 것)과 리셀(Resell·재판매)족 열풍에 제품 가격은 치솟고 있지만 높아진 대중성에 오히려 브랜드 격이 낮아졌다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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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아 PSR 등급 회원인 A씨는 “샤넬 오픈런이 시작된 이후 진짜 VIP들은 샤넬을 안 간지 오래다”며 “오픈런을 해도 원하는 가방을 살 수 없는 데다가 대부분 리셀러나 예물과 같은 목적 구매가 많아 매장 분위기나 수준이 예전과 같지 않다”고 설명했다.
백화점 VIP들 사이에서 샤넬의 격이 떨어졌다는 반응이 나온 건 꽤 오래된 일이다. 통상 명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제품을 구매하며 느끼는 만족감과 매장 직원들로부터 받는 친절한 서비스 등 ‘고객 경험’ 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하지만 최근 젊은 세대가 명품 소비에 적극 뛰어 들면서 나타난 오픈런과 리셀 현상에 부자들 사이에 ‘샤넬 백은 아무나 다 사는 백’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구매를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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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인하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는 “명품과 같은 사치재는 너도나도 사는 ‘동조’ 현상 다음에 반드시 따라오는 게 ‘차별화’ 현상”이라며 “차별화를 꾀해도 또 사람들이 따라오면(동조화) 다시 차별화를 꾀하는 양상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데 최근 부자들이 브랜드 로고가 드러난 명품 대신 티 안나는 명품을 걸치고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자부심을 갖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분석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명품 가방이나 고급 와인 등 가격이 높아져도 수요가 증가하는 ‘베블린 재화’들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차별화 하려는 데서 생겨난 것”이라며 “다른 사람의 소비에 대한 정보가 쉽게 공유·전파될 수 있는 환경에서 네트워크 효과가 높아질수록 해당 재화를 사용했을 때 느낄 수 있는 효과나 만족감이 떨어져 다른 사람과 차별화 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노력에도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불만이 나온다. 현대백화점 자스민 회원인 B(52)씨는 “여전히 매장에 편하게 들어갈 수도 없지만 매장 앞에 쭉 늘어서 있는 사람들 행색을 보면 들어가기가 불쾌하고 싫어진다”며 “매장 직원들도 상황을 알지만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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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샤넬의 새해 기습적 가격 인상에도 오픈런 열기가 식기는커녕 오히려 심화하는 모양새다. 샤넬은 지난 11일 ‘코코핸들’ 플랩백 등 인기 제품 가격을 10~17% 인상했다. 지난해 2월과 7월, 9월, 11월 총 4번에 걸친 인상으로 진입 문턱을 높였지만 여전히 높은 수요에 제품 확보를 위한 경쟁은 훨씬 더 치열해지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