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異야기]①37년, 2대를 이어온 동업…신흥에스이씨

신흥SEC, 1997년 신흥정밀로 부산서 공동창업
삼성SDI에 브라운관TV용 '전자총' 등 납품
산업구조 변화로 위기, '09년 2세대 공동대표 경영 시작
황만용·김기린 공동대표, 2차전지용 안전변 개발로 위기 돌파
  • 등록 2016-08-23 오전 6:50:00

    수정 2016-08-23 오후 3:59:47

[오산=이데일리 박경훈 기자] “37년 동안 정말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는데 다들 안 믿더라고요.”

지난 18일 경기 오산시에 있는 신흥에스이씨 본사에서 만난 황만용(52)·김기린(51) 공동대표는 회사 경영철학을 선대회장의 뜻을 이어받은 ‘화목’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신흥에스이씨의 황만용(사진 왼쪽)·김기린 공동대표는 “끊임없는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사업 성공의 비결이라 말했다. (사진=박경훈 기자)
흔히 사람들은 ‘성공한 동업’을 떠올릴 때 ‘구씨’와 ‘허씨’가문이 함께한 LG(003550)·GS(078930)를 떠올린다. 중소기업에도 이처럼 아름다운 사례가 있다. 금형부품 업체인 신흥에스이씨의 이야기다. 1979년 창업한 이 회사는 현재 2세대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신흥에스이씨는 2차전지 폭발방지 제품인 안전변(Safe Valve)이라고 불리는 캡어셈블리(Cap Assembly)가 주 생산 품목이다. 안전변은 폭발을 방지하는 ‘뚜껑’ 역할을 하는 금형정밀부품이다. 이 장치를 통해 휴대폰·노트북·전기자동차 배터리 등의 폭발사고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

‘79년 부산의 작은 금형공장서 매출 800억원 강소기업으로

신흥에스이씨는 1979년 부산에서 신흥정밀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회사다. 창업주인 최화봉(75)·김점용(76) 회장은 창업 전 금성사(현 LG전자(066570))에서 함께 일했지만 당시에는 서로 모르던 사이였다.

1970년 삼성이 전관사업을 시작하며 삼성NEC(삼성전관·현 삼성SDI(006400))를 만든다. 이때 최 회장과 김 회장은 이곳으로 스카우트된다. 이들은 같은 부서에서 일하며 서로 알게 된다. 금성사에서 일했던 연까지 더해 이들은 막역한 사이로 발전한다. 삼성NEC에서의 10년 경험을 토대로 이들은 부산에서 금형부품 기업인 신흥정밀이란 작은 회사를 공동 창업한다.

신흥정밀은 2000년대 전까지만 해도 삼성 브라운관TV에 들어가는 전자총 부품을 주로 납품했다. 1979년 삼성전관이 수원에 브라운관 생산공장을 새로 세웠고 1982년 신흥정밀도 수원으로 이전했다. 이후 수원공장은 오산으로 확장이전하고 양산에도 새 공장을 차린다.

연매출 100억원의 작은 금형부품회사서 10년도 채 되지 않아 800억원의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급성장의 배경에는 황만용·김기린 공동대표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 황 대표는 오산공장, 김 대표는 양산공장을 운영 중이다.

황만용 대표가 안전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경훈 기자)
최화봉 회장 사위 황만용 대표, 김점용 회장 아들 김기린 대표

최화봉 회장의 사위인 황 대표는 서울대 약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약사 출신으로 신흥에스이씨에 들어오기 전까진 금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1993년 석사학위 취득 후 경기 이천에 있는 CJ제일제당(097950) 연구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초반엔 전공을 살려 약제 업무를 봤고 이후 CJ제일제당 본사에서 상품기획 업무를 맡았다. 황 대표는 CJ제일제당 재직시절 고등학교 선배의 소개로 최 회장의 딸과 1995년 결혼하며 신흥에스이씨와 연을 맺는다. 황 대표는 2003년 CJ제일제당에서 퇴사해 신흥에스이씨 중국공장 법인장으로 나선 후 2007년도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한다.

김점용 회장의 아들인 김기린 대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사업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낸 김 대표는 대학은 금형이 아닌 건축설계를 전공했다. 입대 전 아버지 회사에서 용돈벌이로 시작한 ‘박스포장’ 아르바이트를 통해 신흥에스이씨와 처음 연이 닿았다.

1988년 군 제대 후 김 대표는 본격적으로 아버지 공장에서 금형 실무를 배우기 시작한다. 이론을 겸비하기 위해 김 대표는 서울산업대 금형설계학과 야간에 편입을 한다.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 하던 터라 수업이 있는 날이면 30분 일찍 일을 마치고 수원 병점역에서 서울 석계역까지 2시간이 넘는 통학을 하며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금형 전문가로 성장한다.

삼성 협력사였지만 산업구조 변화로 위기 맞아

신흥에스이씨는 규모가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삼성SDI의 협력사로 20여년 간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했다. 하지만 산업구조의 변화는 신흥에스이씨의 위기로 다가왔다. 2000년이 다가오자 브라운관TV 시대가 내리막을 걸었기 때문이다.

신흥에스이씨가 생산하는 브라운관에 필요한 전자총 부품도 더는 필요 없어졌다. 당시 삼성SDI는 새로운 먹거리인 PDP 사업을 돌파구로 삼는다. 신흥에스이씨는 PDP 샷시커버 부품을 담당하는 회사로 탈바꿈한다. 하지만 PDP 산업마저 LCD에 밀려 사양길로 접어든다.

수원공장에 PDP 부품이 있었다면 양산공장은 삼성자동차(현 르노삼성자동차)가 있었다. 이곳에선 삼성이 야심차게 시작한 자동차 사업에 연료 필터 부품을 공급했다.

이후 IMF 여파로 2000년 삼성은 르노에 자동차 사업을 매각한다. 당시 양산공장을 책임지고 있던 김 대표는 “르노삼성이 점차 생산량을 줄이면서 매출도 떨어졌다”며 “2007년경엔 양산공장에 직원 70명 중 50명을 내보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고 돌이켰다.

2000년부터 시작한 2차전지 부품연구…회사 체질 바꿔

불행 중 다행으로 당시 매출 비중은 작았지만 수요가 늘던 휴대폰·노트북 배터리 등에 들어가는 안전변를 2000년도부터 생산해 2007년 국산화에 완전 성공했다.

2009년 황만용·김기린 공동대표 체제에 들어가면서 신흥에스이씨는 반전을 꾀한다. 우선 법인으로 전환한다. 적극적인 R&D(기술·개발) 투자를 위해 창업 때부터 지켰던 무차입경영 원칙을 접는다. 그리고 2차전지 부품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황 대표는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간 소형전지 사업을 꾸려와 기본 기술은 있었다”면서 “2년간 연구 끝에 그간 일본 부품에 의존하던 전기차 2차전지 배터리 안전변을 국산화했다”고 회고했다. BMW, 폭스바겐, 크라이슬러 등 전기차 배터리에는 신흥에스이씨의 캡어셈블리가 들어가 있다.

2000~2006년 50억~80억원 수준에 머물렀던 매출액은 지난해 780억원으로 커졌다.
리튬폴리머전지용 필름(스트립터미널). (사진=박경훈 기자)
신흥에스이씨의 다음 카드는 리튬폴리머전지용 필름(스트립터미널)이다. 이 역시 전지가 파손되는 것을 밀봉해 막아주는 뚜껑역할로 일체형 스마트폰 배터리 등에 사용된다. 황 대표는 “이 제품은 무려 7년 동안 개발했다”며 “현재 삼성SDI 같은 경우는 일본 제품을 주로 쓰는데 곧 이 시장도 국산제품이 쓰일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현했다.

김 대표는 “저희 회사 사훈에 ‘인화단결’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며 “두 세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작은 갈등 하나 없이 회사를 키울 수 있던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황 대표는 “기업은 성장하지 못하면 도태할 수밖에 없다”며 “항상 앞으로 어떤 성장동력을 회사에 장착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흥에스이씨의 올해 매출 목표는 1000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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