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포스코뿐 아니라 아르셀로미탈과 신일본제철, 중국 바오우철강 등 철강업계 글로벌 플레이어들에게 `2050년 탄소중립`은 더이상 새삼스럽지 않은 목표가 됐다.
문제는 탄소 배출이 많을 수밖에 없는 철강생산 공정의 특성 상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린수소와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그린스틸`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인 만큼 이를 둘러싼 업체들 간의 경쟁도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철강 생산업체이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에서도 단연 세계 1위인 아르셀로미탈의 앨런 나이트 기업책임 및 지속가능개발 책임자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다고 해서 철강 생산을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결국 철강을 만드는 방법을 바꿔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토로했다.
실제 올 1월에 나온 컬럼비아대 연구팀의 보고서에 따르면 수소를 기반으로 한 조강 공정에서는 생산되는 강철의 톤당 비용이 적게는 수십 퍼센트(%), 많게는 수백 퍼센트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연구팀은 “어떤 하나의 방법으로만 대규모 탄소 배출 감축을 달성할 수 없는 만큼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야 하며, 이는 상당한 생산 비용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그린스틸을 생산하는 방식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오래된 강철을 재활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방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잡아두는 탄소포집·저장·활용(CCUS)이나 쇳물을 뽑을 때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 등 혁신기술을 이용하는 것이다.
러시아 세베르스탈을 이끌고 있는 알렉산더 셰벨레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1일(현지시간) 컨퍼런스콜에서 “수소를 활용하는 철강 생산이야말로 매력적인 기술이며 우리는 미래에 이를 활용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더 높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수소 저장과 운송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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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책임자도 “탄소포집과 관련된 기술을 활용하면 업체들이 폐기물을 태울 수 있는 것은 물론 공정에서 가치 있는 부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만큼 탄소중립을 넘어 탄소를 줄이는 제조공정까지 구축할 수 있다”고 장점을 강조했지만, “현 단계에서는 어느 쪽 효율이 높을 지 장담할 수 없기에 탄소포집과 수소환원제철 모두에 투자해 테스트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기업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선 정부나 관련단체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 신일본제철은 중장기 경영계획을 공개하면서 “연구개발(R&D)과 수소공급 인프라 구축, 경쟁력 있는 가격의 무(無)탄소 전력과 탄소포집 프로젝트 등에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주는 게 급선무”라고 요청했다.
관련단체에서도 철강업체들이 더 친환경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라인 마련을 준비 중이다. 세계철강협회 클레어 브로드벤트 지속가능성 대표는 “철강업체들에게 탄소 배출을 줄이라는 압박이 전방위적으로 가해지고 있다”며 “기업들도 새로운 기술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만큼 우리도 기술 지원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지원을 등에 업고 철강업체들의 기술 개발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특히 혁신기술로 만들어 낸 그린스틸은 새로운 수요 창출에도 도움이 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제너럴모터스(GM)는 2040년 또는 그 이전에 생산하는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만 만들겠다고 밝히면서 부품이나 소재 협력사들에도 탄소 이용을 배제하도록 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전 세계 철강 사용량의 12%를 차지하는 자동차업체들이 그린스틸을 우선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실제 2026년에 세계 최초로 석탄 등 화석연료를 전혀 쓰지 않는 그린스틸을 시장에 내놓겠다는 목표를 내건 스웨덴 철강회사 사브(SSAB)는 최근 고객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화석연료 없는(carbon-free) 철강으로의 전환은 지속 가능한 재료를 우선적으로 찾는 최종수요자들에 의해 속도를 낼 것”이라며 “차량이나 다른 기계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거나 아예 배제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늘어남에 이 같은 철강 수요도 더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