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왔다하면 팔려"…그들이 ‘낡은 빌라’ 사는 이유

정부지원·대형건설사 진출까지
가로주택정비사업 호재에
사흘안에 다 팔리는 ‘낡은 빌라’
“투자 목적 매매는 주의해야”
  • 등록 2020-05-15 오전 6:13:00

    수정 2020-05-15 오전 7:35:26

[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구축 빌라는 나오자마자 팔려요. 하루 문의 전화가 수십통 오는데, 괜찮은 매물은 바로 바로 팔려요.”(서울 성북구 종암동 S공인중개사무소)

“재건축 사업이 어려워지니까 가로주택정비사업으로 관심이 쏠린 거죠. 대형 건설사까지 들어온다고 하니까 투자자들 관심이 더 커졌어요.”(강북구 K공인중개업소)

(그래픽=문승용 기자)
‘낡은 빌라’시장이 때 아닌 전성기를 맞고 있다. 아파트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던 구축 빌라 재건축 사업이 활기를 띠면서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 덩치 큰 아파트 재건축은 규제 강화로 사업이 더딘 반면 소규모 저층 주거단지를 대상으로 하는 가로주택정비사업(소규모 정비사업)은 정부의 지원으로 활성화하고 있어서다.

사업 가능성 큰 장위동·종암동 빌라 호재

14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이달 둘째주 성북구 장위 11-3구역에서만 노후 빌라 매매 계약 2건이 성사됐다. 두 물건 모두 지은지 20년 정도 된 빌라로, 시장에 매물로 나온 지 이틀 만에 팔렸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업소 설명이다. 해당 매물을 중개한 S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매도물량을 공개하자 마자 바로 팔렸다”며 “그것도 전화상으로 가계약부터 했다”고 전했다.

매매가 이뤄진 A빌라(3층·2룸) 가격은 3억 3000만원으로 대지지분은 21㎡다. 1억 5000만원 보증금에 전세 상태로, 매입자는 1억8000만원만 투자한 것이다. 같은 시기 B빌라(5층·1.5룸·대지 면적 20㎡)도 2억 9000만원에 팔렸다.

마포구 아현2구역 재개발 공사현장 모습(사진=연합뉴스 제공)
연이어 ‘빌라 완판’을 기록한 11-3 구역은 가로주택정비사업 시행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 해당 구역은 현재 조합설립을 추진 중이다. 인근 11-2구역의 가로주택정비사업이 진행 중인만큼 무난하게 정비사업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장위동 뿐 아니라 종암동의 노후 주택·빌라도 매매 시장에 나오는 즉시 팔리는 분위기다. 종암 C빌라(대지면적 25㎡)도 시장에 나온지 일주일만에 2억 4500만원에 매매가 이뤄졌다. 개인이 아닌 법인이 매수한 빌라로, 다주택자가 투자 목적으로 매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빌라가 있는 종암동 일대도 현재 조합 설립을 준비 중이다.

3개월 새 사업장 5곳 증가…정부 지원 ‘톡톡’

최근 낡은 빌라가 부동산투자처로 떠오른 것은 정부의 가로주택정비사업 등 소규모 재건축 지원 영향이다. 지난 6일 정부는 가로주택정비사업에 대한 용적률 규제 완화, 주차장 설치의무 완화, 분양가 상한제 규제 완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큰 도로와 인접한 낡은 빌라나 단독주택 일대를 신축 아파트로 탈바꿈하는 소규모 정비사업이다. 사업 진행속도도 민간 재개발 사업보다 2배 이상 빨라 주민들도 큰 부담없이 가로주택정비사업에 뛰어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 내 가로주택정비사업장은 총 60곳으로, 지난해 4분기보다 5곳 증가했다.

대형 건설사들이 가로주택정비사업에 관심을 보이면서 ‘브랜드 아파트’를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낡은 빌라’ 호재로 작용했다. 이미 현대건설(000720)과 호반은 사업에 진출했고, 대림산업(000210), 대우건설(047040), SK(034730)건설 등도 사업 을 준비 중이다. 장위동 주민 박모(55)씨는 “대형 건설사들이 진입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수익성이 좋다는 의미가 아니겠냐”며 “낡은 주택에서 브랜드 아파트로 이사갈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가로주택정비사업을 노린 ‘투자’ 목적의 낡은 빌라 매입에는 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아직 사업 자체가 초기 단계라 수익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다”며 “소규모 정비사업인 탓에 주변 인프라가 제대로 개발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변 인프라의 한계로 새로 지어진 아파트의 수익성이 기대보다 낮을 수 있다”며 “실거주 목적이 아닌 시세 차익을 노린 투자로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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