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의 창과 방패]우리가 그들과 달라야 하는 이유

  • 등록 2020-05-22 오전 7:00:00

    수정 2020-05-22 오전 7:00:00

[임병식 전북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윤미향 파문이 간단치 않다. 시민사회를 불신하는 눈길이 첫째다. 그동안 헌신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모양새다. 그 틈을 타 일본 극우세력은 기세를 올리고 있다. 위안부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오히려 큰소리치고 있다. 윤미향 논란은 여러 논란거리를 제공한다. 어둡고 그늘진 역사도 다시 소환한다. 가해자로서 일본, 피해자로서 한국과 악연이다. 한일관계는 바싹 마른 겨울 산처럼 작은 불씨로도 온산을 훌렁 태우곤 한다. 윤미향과 ‘정의연’은 그런 불쏘시개로 작동하고 있다.

일본에 적지 않은 지인이 있다. 가끔 그들은 내게 묻는다. 이제는 잊을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용서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가해자는 반성하지 않은데 피해자만 용서하라고.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하지 못하는 상황은 만든 그들에게 다시 묻는다. 독일과 같은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게 그렇게 어려우냐고. 그런데 좋은 먹잇감을 찾은 듯 날뛰고 있으니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잠시나마 용서를 떠올렸던 평정심을 잃게 되는 이유다.

선동적인 극우 신문 산케이(産經)가 중심에 있다. ‘반일 집회 그만두고 (소녀)상 철거를’이라는 사설을 보자. “반일 증오의 상징인 위안부상을 조속히 철거하면 좋겠다”며 소녀상 철거로 논지를 확대했다. 또 문 대통령에게는 “회계처리 의혹을 좌시하지 말고 적절하게 대응하라”고 했다. 앞뒤 분간 못하는 망발이다. 그래서 빌미를 제공한 윤미향과 ‘정의연’이 원망스럽다.

일본은 임진·정유 7년 동안 조선을 초토화시켰다. 그래도 조선은 120여 년 동안 문화사절단 격인 통신사를 파견해 교류했다. 그들이 자랑하는 문화적 성과 대부분은 우리에게 빚지고 있다. 괜한 우월감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한론을 앞세워 36년 동안 재차 유린했다. 말과 글을 빼앗고 학살, 고문, 위안부 동원, 강제징용까지 죄악은 헤아릴 수 없다. 그런데도 참회는커녕 툭하면 발뺌이고 모르쇠로 일관한다.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물론 아예 부정과 왜곡을 일삼고 있다.

수년 전 큐슈 가고시마 치란(知覽)에 다녀왔다. 가고시마는 우리를 괴롭힌 근거지다. 이곳에서 정한론이 싹텄다. 큐슈와 야마구치를 무대로 조선을 침탈하자는 사상이 자랐고, 실행에 옮겼다. 요시다 쇼인부터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사이고 다카모리, 사카모토 료마가 대표적이다. 치란에는 가미카제(神風)와 제로센(零戰)이 출격한 특공기지가 있다. 둘 다 돌아오지 않는 인간 폭탄이다. 그들은 앳띤 청년들에게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라고 세뇌시켰다.

조작된 애국심 아래 희생된 특공대원은 모두 1,036명. 조선인도 11명 포함돼 있다. 인간 폭탄은 엽기적이다. 치란을 언급한 것은 다름 아니다. 광기와 미화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평화회관이란 이름부터 엉뚱하다. 2014년에는 이곳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신청했다. 세계기록유산은 인류가 후손에게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기록물이다. 그런데 부끄럽고 광기어린 현장을 신청했으니 제정신인가 싶다. 앞마당에는 고이즈미 총리가 다녀갔다는 기념비도 있다.

고이즈미는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이다. 신사 참배를 강행한 첫 총리다. 그는 힘들 때마다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가미카제 정신을 떠올리며 극우정치를 강행했다. 고이즈미에서 시작된 극우 정치 뿌리는 아베로 이어지고 있다. 둘 다 한 목소리로 위안부 실체를 부인하고, 고노 담화를 재고해야 한다며 역사를 부정하고 있다. 치란 특공평화회관과 위안부 부정은 이런 점에서 판박이다. 멀쩡한 역사를 부정하고 발뺌하는 일본 극우는 윤미향과 ‘정의연’을 빌미로 준동하고 있다. 위안부 실체를 부정하려는 삐뚤어진 역사관이다.

다시 윤미향과 ‘정의연’으로 돌아간다. 위안부 실체를 알리는 운동은 계속되어야 하고, 잘못은 잘못대로 가리는 게 맞다. 회계 부정과 보조금 유용이 있다면 응당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게 정의다. 내 편이라고 감싼다면 공멸한다. 또 일본 극우로부터 조롱과 비웃음을 살 수밖에 없다.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 기억 왜곡 운운하는 것 또한 몰염치하다. 그 분이 겪고 있을 참담함과 분노를 헤아리는 게 우선이다. 위안부 할머니와 ‘정의연’을 이간질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의혹을 규명하고 책임을 분명하는 건 아프지만 해야할 일이다. 만일 진영논리로 감싸고 부인한다면 가미카제를 미화하고 위안부 실체를 부정하는 그들과 다를 게 없다.

덧붙이자면 시민사회로부터 정치권 진입을 고민할 때다. 시민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정치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특정분야에서 현장을 경험한 전문성은 긍정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 문제는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어두운 이들이다. 소명과 직분을 내팽개친 채 신분 상승 수단으로 삼는 이들에 대한 문제 제기다. 너도나도 불나방처럼 뛰어든다면 순수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순수성을 상실한 시민운동은 설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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