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온라인 판매' 떠오르지만…업계는 '동상이몽'

온라인 소비 늘고 가정용 주류시장 비중↑
대형업체 중심으로 '주류 전자상거래' 요구
소형양조장, 마트·편의점 유통업계는 난색
정부도 소관 부처 현안따라 입장 엇갈려
소매점 '라스트 마일' 배달 등 대안 제시도
  • 등록 2021-12-08 오전 8:30:58

    수정 2021-12-08 오전 8:30:58

[이데일리 김범준 기자] 온라인에서 술을 사고팔 수 있도록 하자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환경으로 전자상거래를 통한 비대면 소비 방식이 더욱 빠르게 보편화 되면서다. 지속되는 사적모임 제한으로 유흥시장은 침체의 늪에 빠지고 가정용 주류시장이 급증한 영향도 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수제 맥주 판매대 모습.(사진=연합뉴스)
현재 국내에서 지역·전통주를 제외한 모든 주류는 온라인 또는 통신 판매 등 전자상거래와 배송이 주세법 등으로 금지돼 있다. 다만 일반 주류도 지난해 7월 관련 법령 일부 개정 시행으로 전화 또는 모바일 앱 등을 통해 주문받은 주류를 편의점 등 오프라인 영업장에서 소비자가 직접 인도하는 방식의 이른바 ‘스마트 오더’는 가능한 상황이다. 음식 배달 주문 시 전체 음식 가격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주류 배달 판매도 가능하다.

일반 주류의 전자상거래의 벽은 여전히 높다. 주류가 다른 식음료 또는 생활용품처럼 이커머스 등을 통한 편리한 온라인 거래가 이뤄지려면 관련 법령 개정이 필수적인데, 이를 두고 정부 관계부처뿐 아니라 관련 업계 안에서도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어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주류의 온라인 판매가 업계 안팎에서 마냥 환영을 받는 게 아닌 업종과 규모·형태 등에 따라 각자의 입장이 제각각인 ‘동상이몽’(同牀異夢) 상황인 것이다.

우선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 오비맥주 등 전통적 대형 주류 기업들은 대체로 주류 전자상거래 허용을 바라는 입장이다. 최근 전반적으로 소비자들의 온라인 상거래가 급증한데다 홈술(집에서 술마시기)과 혼술(혼자 술마시기) 트렌드 확산에 가정용 주류시장이 발달하면서다. 실제 주류 업계에 따르면 10조원 규모의 국내 주류시장에서 업소용(유흥용) 대 가정용 주류 판매 비중은 코로나 시대 이전 약 55대 45에서 최근 35대 65로 크게 뒤집어졌다.

하지만 대형 주류 제조사 내부에서도 주류의 온라인 판매에 대한 시선은 엇갈린다. 기업은 이미 갖추고 있는 충분한 생산 설비 가동을 통해 바뀐 주류 소비 트렌드에 대응하고 매출 확대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마트 등 도·소매상인을 상대하는 영업조직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주류의 온라인 판매가 가능해지면 오프라인 거래가 줄면서 그만큼 영업직원들의 역할이 줄어드는 고용의 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매출이 줄어들게 될 유통 업체 역시 물론 반발한다.

최근 편의점 채널을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수제맥주 업계에서도 목소리는 나뉜다. 제주맥주와 카브루, 세븐브로이,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등 자체 대형 브루어리(양조장)를 갖추고 있는 업계 리딩 업체들은 온라인 판매를 적극 바라고 있다. 자사 설비를 통해 캔맥주와 병맥주를 자체적으로 대량 생산·공급이 가능해 늘어나는 판로에 즉각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수제맥주협회를 통해 대부분의 수제맥주 업체들이 전통주 업체들처럼 지역 기반 소규모 주류제조면허를 가진 영세 업체인 만큼 똑같이 온라인 판매를 허용해달라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다.

▲수제맥주 업체 카브루가 최근 완공한 경기 가평군 ‘비전 브루어리’ 외부(왼쪽)와 경기 이천시에 위치한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이천 브루어리’ 내부 모습.(사진=각 사)
반면 자체 캔입 및 병입 생산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중·소형 수제맥주 업체들은 온라인 판매 허용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시장이 확대되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등 외부 위탁 생산 유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생산 단가는 올라가고 생산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업계 내 양극화 등 쏠림 현상이 더욱 극명해지면서 일부 대형 수제맥주 업체들만 살아남고 수많은 지역 영세 양조장들은 모두 고사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부 유관부처에서도 입장이 엇갈린다. 국내 전자상거래 등 IT 산업 발달을 주무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의 육성을 담당하는 중소벤처기업부 등은 영세 주류업체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판매를 위한 제도 개선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미성년자의 주류 구매 등을 우려하는 여성가족부와 국민의 건강증진을 목표로 하는 보건복지부는 기본적으로 반대하는 상황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역시 전통주의 예외적 온라인 판매는 국내 농산물 소비 촉진과 농가 육성을 위한 제도인 만큼 일반 주류로 확대에 신중한 입장이다.

이 밖에도 주류 전자상거래를 허용하면 국내 주류뿐 아니라 해외 주류업체들의 온라인 직접 판매와 배송도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도 따른다. 만약 이를 제한할 경우 전 세계적 흐름인 세계무역기구(WTO) 협약에 위배되기 때문에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류 전자상거래는 앞서 맥주 과세 체계를 종가세(가격 기준)에서 종량세(판매량 기준)로 전환 등 사례와는 차원이 다른 영역”이라며 “술 판매마저 온라인으로 넘어간다면 동네 마트와 점포와 같은 지역 소상공인들의 생존권 문제와도 직결되는 등 직·간접적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해 논의가 더딜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편의점과 마트 등 소매점에서 온라인 주문을 받고 라스트 마일(last mile·소비자와 만나는 최종 구간) 딜리버리를 통해 인증된 성인 소비자에게 배달·판매하는 방식 등을 상생안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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