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전남 강진 여고생 실종 사망, 강서 PC방 살인. 지난해에도 충격적인 사망·살인 사건이 많은 국민을 놀라게 했지만 2019년 한국 사회를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살인사건이 두 건이나 발생했다. ‘안인득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과 ‘고유정 전 남편 토막 살해 사건’이다. 두 사건은 범행 방식의 잔혹함과 수법의 치밀함 모두 상상조차 하기 힘든 끔찍한 범죄로 2019년 한국 흉악 범죄의 실태를 보여 준다.
‘묻지 마 살인마’…보호관찰제 정비요구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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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절정이던 지난 4월 17일.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 단지에 불이 났다. 주민들이 대피하는 아수라장 속에서 한 남자가 주민들을 흉기로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남자는 단지 주민이던 안인득(42). 불을 지른 것도 그였다. 안은 악감정을 갖고 있던 주민들을 상대로 급소만 노려 범행을 저질렀다. 칼과 휘발유를 사전에 구입해 범행을 계획했다. 이 사고로 5명이 죽고 6명이 심한 부상을 입었으며 11명은 화재로 다쳤다.
안인득의 ‘묻지 마 방화·살인’으로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국회에서는 이른바 ‘안인득 방지법’, 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다. 치료 감호나 치료 명령을 받고 보호관찰 대상이 된 사람의 보호관찰이 끝났을 때, 보호관찰소장이 관할 경찰서장과 정신건강복지센터장에게 보호관찰 종료 사실 등을 통보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경찰이 안인득의 병력 등을 미리 파악했다면 20명이나 넘는 사상자를 낸 대형 참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전 남편 살해 혐의…의붓아들까지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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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득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여 뒤인 5월25일. 고유정(36)은 제주시 조천읍 한 펜션에서 전 남편 강모(36)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했다. 범행 당시 고유정은 전 남편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A(5)군과 동행 중이었다. 27일 펜션을 나섰고 다음 날 배편으로 제주를 빠져나갔다. 완도행 여객선상에서 전 남편의 시신 일부를 버렸다. 경기도 김포시 등에서도 시신 일부를 유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6월 1일 청주에서 경찰에 긴급 체포된 고유정은 “왜요? 그런 적 없는데, 제가 (남편에게) 당했는데”라고 반문했다.
고유정은 범행 수법이 잔혹한 만큼 침착해 큰 충격을 줬다. 고는 제주 펜션을 손수 예약했고, 인터넷에서 살해 방법 및 도구 등을 검색했다. 거주지인 충북 청주시의 한 병원에서 수면 유도제인 `졸피뎀`을 미리 구매했고 살해하기로 마음 먹은 장소인 제주 내 마트에서 흉기와 청소도구를 미리 구비했다. 법정에서 고유정은 “전 남편이 나를 성폭행하려고 했고 그 때문에 저항하다가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항변했지만 철저한 준비 과정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고유정 사건은 겨울이 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검찰이 고를 의붓아들 살해 혐의로 추가 기소한 것이다. 검찰은 고유정이 지난 3월 2일 새벽, 충북 청주시 자택에서 현 남편과 한 침대에서 자던 의붓아들 B(4)군의 등 위로 올라타 아이의 머리를 침대 방향으로 돌린 뒤 강하게 압박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제주지방법원은 전 남편 살해와 의붓아들 살해 의혹 두 건을 병합 심리 중이며 내년 초 두 사건의 결심 공판을 진행할 계획이다. 고유정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