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프리즘]수사검사와 공판검사

법무법인 바른 조재빈 변호사
  • 등록 2024-04-05 오전 6:15:00

    수정 2024-04-05 오전 6:15:00

[법무법인 바른 조재빈 변호사] 초임 검사 시절 ‘무죄 취지로 재심 개시’된 사건의 공소유지를 담당했다. 무고죄로 구속기소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던 사건이었다. 피고인은 형사사건과 연관된 민사소송에서 정반대로 승소 판결을 받았고, 이 민사판결을 토대로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아냈다. 재심 재판부는 무죄 선고를 당연시하는 분위기에서 재판을 시작했다. 재심 사건은 무죄라는 것은 사실상 법조계에서 상식으로 통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판에 투입된 필자가 기록을 검토해보니 무죄를 수긍하기 어려웠다. 피고인이 민사소송에서 승소한 이유는 재판 상대방이 교통사고를 당해 법원에 출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민사소송 재판에 출석한 증인이 피고인 부탁을 받고 위증한 사실도 밝혀졌다. 필자는 이런 사실을 재심 사건 법정에서 입증해냈다.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무죄 취지로 재심이 개시된 사건에서 다시 유죄가 선고되는 것은 사실상 초유였다.

2003년경 서울중앙지검 공판부 검사 시절 맡은 가짜휘발유 세녹스 사건도 처음부터 유죄는 아니었다. 공판부에 발령받자마자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는 바람에 손쓸 겨를이 없었다. 당시 검찰 지도부는 대법원에서 법리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필자의 생각은 달랐다. 사건이 뒤로 밀릴수록 발생할 피해가 막중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가짜휘발유 세녹스가 확산한 탓에 매년 세금 1조원을 걷지 못하고 있었다. 전국에는 필자가 맡은 사건의 결과를 반영하고자 재판을 미룬 4000여건의 동종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필자는 증거를 검토해 제조사가 이렇다 할 기술개발 등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세녹스를 제조한 사실을 입증했다. 이를 위해 다수의 증인과 피고인을 상대로 끈질긴 신문을 이어갔다. 그 결과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항소심은 피고인에게 유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이 길어지면서 필자는 공판부에서 형사부, 특수부로 인사이동했지만 공소유지 업무를 자원해서 도맡았다. 대법원까지 재판을 책임진 결과 세녹스 사건 유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재판의 유무죄가 공판검사의 열정에 따라 갈린 사례는 차고 넘친다. 유죄 선고를 통한 정의 실현을 위해 공판검사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세상이 떠들썩하게 압수수색을 하고 인신을 구속해 기소한다고 하더라도 무죄가 선고되면 말짱 도루묵이다. 검찰은 중요사건이 무죄선고 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공평무사한 자세로 매우 신중하게 기소여부를 판단해야 하고 기소한 후에는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러나 검찰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지 않은 게 사실이다. 검사 작성 조서의 증거능력이 사라지고 공판 중심주의가 강화되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이 그렇다면 검찰도 공판의 공소 유지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공판검사가 업무에 몰입할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우선 1개 재판부에 1명의 공판검사를 배정해야 한다. 검사가 충분한 시간을 투입해 기록을 검토하고 공판 전략을 구상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이다. 그래야 어렵게 증거를 모아 기소한 사건이 유죄를 받을 수 있다. 수사검사가 공판에 직접 참여하는 ‘직관’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증거를 직접 수집해 사건에 이해가 깊은 수사검사가 공판에 참여해도 유죄를 받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형사부에서 기소하는 사건들도 사건의 중요도, 복잡성, 기록의 분량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직관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필자가 부산지검과 인천지검 제1차장검사 시절 형사부 검사에게 중요사건을 직관하도록 지도했더니 좋은 성과를 냈던 기억이 있다. 형사사건의 유무죄는 사법 시스템을 통한 정의 실현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이다. 범죄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내는 검사의 직무는 공소유지를 제대로 했을 때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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