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룩 짭짭’ 맛좋은 국수… 여기에 담긴 한 남자의 사연 [쩝쩝박사]

서울 강서구 방화동 무한리필 국수집
수익금은 전액 지역 사회에 기부
“배불리 먹고 따뜻한 마음 전파되길”
  • 등록 2022-08-27 오전 10:00:00

    수정 2022-08-27 오전 10:00:00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지난 23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위치한 국숫집을 찾았다. (사진=송혜수 기자)
[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김씨! 밥은 먹었는가?”

지난 23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위치한 국숫집 앞에는 점심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여름철 별미인 시원한 열무국수를 먹으러 동네에서 소문난 국숫집을 찾은 것이다.

2007년에 문을 연 이 가게는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익금 전액이 어르신들의 일자리 창출과 청소년들의 장학금, 그리고 어린이들의 꿈을 위해 사용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게 곳곳에는 ‘내가 먹은 국수 한 그릇, 장학생의 후원자가 됩니다’ ‘여러분이 산 참기름 한 병, 어르신 일자리가 늘어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가게 내부는 깔끔하고 정갈하다. 오픈된 주방인 점과 ‘무한리필’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사진=송혜수 기자)
그렇다고 국수가 비싼 것은 절대 아니다. 잔치국수는 6000원, 비빔국수와 열무국수는 6500원, 만두는 4000원이다. 이마저도 사실 물가 상승으로 원가 부담이 커지면서 최근에서야 올린 가격이다. 큰 대접에 한가득 담아주면서도 부족하면 무한 리필을 해준다. 그야말로 ‘만원의 행복’인 셈이다.

이날 주문한 국수는 총 세 그릇.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그리고 열무국수를 시켰다. 국수와 함께 곁들여 먹는 만두도 추가했다.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동안 가게를 둘러보니 깔끔하고 정갈한 내부와 오픈 주방인 점이 눈에 띄었다.

잔치국수 위에는 애호박과 양파, 김가루 등이 고명으로 올라가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
먼저 맛본 잔치국수는 진하게 우려진 따뜻한 멸치육수가 속을 훈훈하게 데웠다. 자극적이지 않고 적당히 간을 맞춘 삼삼한 국물을 먹고 있자니 찬밥을 말아 겉절이 김치를 올려 먹어도 맛있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함께 들어간 재료는 애호박과 양파, 김 가루 등이었다. 재료가 전부 아낌없이 가득 담겨 있었다. 국수를 한 젓가락 집어 맛보니 탱글탱글한 면발이 호로록 들어왔다. 면은 퍼지지 않아 먹는 내내 식감이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비빔국수 양념에 윤기가 반지르르하다. (사진=송혜수 기자)
두 번째로는 비빔국수를 먹었다. 양념을 버무릴 때 나는 찰진 소리가 제일 먼저 귀를 간질였다. 면이 서로 엉겨 붙지 않아 양념이 골고루 묻어났다. 맛은 매콤하면서도 달짝지근했다. 고소한 참기름 향도 은은하게 퍼졌다. 고명으로 올라간 시원한 무와 오이는 자칫 텁텁할 뻔한 입안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시원한 열무 국수의 모습. 열무가 한가득 올라가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
세 번째로는 열무국수를 맛봤다. 시원하고 새콤한 국물이 침샘을 자극했다. 국수 위에 산처럼 쌓아 올린 열무는 아삭하고 상큼했다. 열무 줄기를 씹으니 시원한 열무김치 국물이 쭉 들어와 목구멍을 적셨다. 열무와 함께 국수를 한 젓가락 집어 먹어보니 찰기 가득한 면발이 입안을 찰싹 때렸다. 함께 주문한 고기만두를 곁들여 먹으니 감칠맛이 배가 됐다.

만두는 8개에 4000원이다. 만두피는 쫀득하고 속은 따뜻했다. (사진=송혜수 기자)
찜기로 푹 쪄낸 만두는 고기와 김치만두 각 4알씩 총 8알이 나왔다. 크기는 한입 크기로 적당했다. 따뜻한 만두는 간장에 찍어 먹거나 김치에 싸 먹어도 좋지만, 국수와 함께 먹을 때 그 빛을 발했다. 고기만두는 비빔국수와 열무국수에 잘 어울렸고, 김치만두는 잔치국수와 궁합이 잘 맞았다.

봉지만두를 제외한 모든 메뉴가 만원을 넘지 않는다. 오른쪽 사진은 가게 곳곳에 붙어 있는 기부 메시지 (사진=송혜수 기자)
가격이 싸다고 재료가 부실하거나 음식 맛이 형편없는 게 아니었다. 김동운(74) 대표는 애초 가게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지역사회를 돕기 위한 밑천을 마련하고자 15년 전 가게 문을 열었다는 김 대표는 인건비 등 제반비용을 제한 수익 100%를 기부했다고 한다.

그가 처음 지역사회를 돕고자 마음먹었던 계기는 1997년 어느 날 방화동에서 독거노인의 시신이 보름 만에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김 대표는 ‘방화동이 개발되면서 곳곳에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을 때 다른 한쪽에서는 쓸쓸히 한 생명이 죽어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영상=송혜수 기자)
이때부터 그는 노인을 위한 일을 하나둘 시작했다. 첫 번째로 시작한 일은 다니던 교회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지역 내 독거노인들을 위한 ‘사랑의 건강식’ 전달 봉사였다. 이후에는 노인에게 활기를 찾아주고자 사비와 후원금을 모아 2002년 노인연합회를 만들고, 2006년 전문 교육을 받아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노인대학을 세웠다.

김 대표의 도움으로 당시 노인들은 어린이도서관 등에서 이야기보따리 강사를 하거나 지역 순찰대인 북치는 실버순찰대, 전통놀이 짚공예 강사 등으로 일하게 됐다. 국숫집은 이 시기에 문을 열었다. 동네 사람들은 배불리 국수를 먹고 그 수익금으로는 노인과 학생을 돕는다는 목적이었다.

(영상=송혜수 기자)
김 대표는 “장사가 잘될 때는 한 달에 1800만원의 수익이 발생했다”라며 “그 돈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축제도 열고 어려운 아이들을 돕기 위한 영우장학회도 세웠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3호점까지 낼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국숫집은 현재 1호점만 남아 있다.

그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손님들의 발걸음이 드문드문 이어졌다”라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난 이후엔 이어진 경기 불황으로 계속 적자가 나고 있다. 인건비 챙기기도 빠듯해 수익 기부 활동이 잠정 중단됐다”라고 밝혔다.

잔치국수는 김치와 곁들여 먹어도 맛있다. (사진=송혜수 기자)
그럼에도 김 대표는 힘닿는 데까지 계속 국숫집의 문을 활짝 열어두겠노라 다짐했다. 그는 “최근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 수원 세 모녀와 보육원 출신 아이들의 극단적 선택 뉴스 기사가 하루가 멀다고 나온다”라며 “배고파서 죽는 경우도 있지만 주변의 무관심에서 죽는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다.

이어 “복지는 마음의 빵을 주는 것과 같다”라며 “먹는 빵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주면서 다시 일어날 희망과 힘을 길러주는 게 제일 필요한 것 같다”라고 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도 계속 힘닿는 데까지 국수집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사진=송혜수 기자)
이 때문에 김 대표는 계속 국숫집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국숫집을 방문하는 이들이 음식을 배불리 먹고 주변에 따뜻한 관심을 전파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겼다. 김 대표는 “노인이 춤추고 청소년과 장애인이 신나고 어린이가 꿈꾸며 행복해지는 동화 같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생각이 아닌 행동으로 온정을 베풀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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