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정책 대전환]"하나도 버거워"…다자녀가 무서운 부부들

“하나는 참을 만 했는데 둘은 힘들어”…다자녀가 무서운 부부들
유배우자 합계출산율 2.2명 이상 연구결과…“한계봉착·하락세”
“혼인율 낮은 상황에서 유배우자 출산율 효과 제한적”
  • 등록 2020-01-02 오전 2:45:00

    수정 2020-01-02 오전 2:45:00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한국경제학회의 ‘경제학연구’에 게재한 ‘한국의 출산장려정책은 실패했는가?: 2000년∼2016년 출산율 변화요인 분해’ 보고서 내 유배우자 합계출산율 추이(자료=한국경제학회 제공)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지난 7월 두 번째 아이를 출산한 김지수(36)씨는 올해 12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올해 4살이 된 첫째를 낳고 유명 광고회사에서 육아용품 회사로 자리를 옮겼지만 둘째 아이까지 키우면서 계속 직장 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김씨는 “첫 아이 때도 회사를 다시 다니기가 녹록지 않았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었다”며 “그러나 아이가 늘어나면서 직장 생활을 유지할 여력이 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저출산 문제 해결 방안으로 일부 전문가들은 ‘결혼한 여성(유배우) 출산율’에 주목하라고 말하곤 한다. 2018년 합계 출산율은 0.98명에 불과하지만, 같은 기간 유배우 출산율은 1.78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결혼한 여성들은 적어도 1명 이상의 아이를 낳았고, 2명 또는 3명 이상 낳을 의지와 가능성이 있으니 이들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숫자만 보면 그럴듯한 논리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가정의 현실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이의 숫자를 결정하는 것은 부모의 계획이 아니라 경제력과 양육 부담의 크기에 따라 좌우된다.

아이를 하나 더 낳으면 양육 비용은 두 배로 드는데 김 씨의 경우처럼 오히려 맞벌이는 어려운 상황이 되며 소득은 줄어든다. 아이를 한 명 더 낳는 것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상황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8세 이하 자녀와 사는 부부 가구의 월평균 지출은 371만원으로 자녀가 없는 부부 가구 230만원보다 141만원이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이유로 ‘아이를 하나 낳아 키우면 외롭다’는 걱정은 옛말에 됐다. 오히려 일부 지역 ‘맘카페(엄마 커뮤니티)’에서는 아이를 하나만 낳아 경제적인 지원과 돌봄을 집중해 제대로 키우는 게 낫다는 엄마들의 의견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반대로 아이를 셋 이상 낳은 가정을 두고는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그렇다는 평가가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방송국 작가로 일하다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선 김진아(43)씨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대단하다, 남편이 돈을 잘 버는 모양이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 괴롭다. 아이를 셋 낳았다는 이유로 인사처럼 듣는 말이지만, 그는 “사실 셋째는 계획하지 않았던 아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까지만 해도 프리랜서로라도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셋째를 낳고는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며 “아이 셋을 계획해서 낳는 집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이를 셋 이상 계획해서 낳아 기르는 가정의 경우 경제적인 기반뿐만 아니라 조부모 등 주변에서 아이를 돌봐줄 환경이 조성돼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 셋째 아이의 돌을 맞는 연미연(43) 씨는 친정 부모님뿐만 아니라 시부모님까지 모두 한동네에 살고 있다. 은퇴한 양가 부모님이 아이 보육에 적극적으로 나서준 덕분에 셋째까지 계획할 수 있었다.

연 씨는 “원래 아이를 많이 셋 이상 가지고 싶었지만 양가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꿈도 꾸지 않았을 일”이라며 “주변에서는 이 상황이면 아이를 하나 더 낳아도 되겠다며 부러워 한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배우 출산율에 대한 기대도 접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한국경제학회의 ‘경제학연구’에 게재한 ‘한국의 출산장려정책은 실패했는가?: 2000년∼2016년 출산율 변화요인 분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유배우 출산율은 2.2명을 웃돌았다. 당시 유배우 출산율이 합계출산율 증가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러나 유배우 출산율마저도 이때가 정점이다.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다자녀 혜택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작 아이 하나 더 낳는 것을 두려워하는 상황에서 공과금 할인, 청약 우선순위 등 혜택이 아이를 낳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철희 교수는 “과거의 정책이 유배우 출산율을 증가시킨 효과가 있었다면 이는 출산 의사가 이미 강했던 부부들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며 “그런데 2005년 이후 10년 동안 유배우 출산율이 높아지면서 이렇게 경계에 서 있던 부부의 비율은 줄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유배우 출산율이 획기적으로 증가한다 해도 현재와 같이 20~39세 여성의 유배우 비율이 50%로 감소한 상황에서 이에 따른 합계 출산율과 신생아 수의 증가는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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