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사 늘려라 압박에도..女사외이사 단 8%뿐

[금융권 유리천장]②
자산 2조 이상 금융사 22곳 전수조사
우리금융, 여성 이사·임원 한명 없고
삼성·한화생명도 사외이사 모두 남성
사외이사 없는 곳 14곳, 임원 없는 곳도 9곳
  • 등록 2020-12-07 오전 5:01:00

    수정 2020-12-07 오전 5:01:00

[이데일리 전선형 김범준 기자]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경영이요? 저희 회사는 석탄ㆍ화력발전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국내 기업에게 ESG 경영과 관련해 질문해보면 십중팔구 이렇게 대답한다. 환경과 관련된 얘기는 끝없이 쏟아지지만, 정작 지배구조에 대한 설명은 많지 않다. 특히 성 평등과 관련해서는 아예 인식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ESG 경영의 현주소다.

금융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글로벌 투자자를 중심으로 여성 사외이사의 비중을 높이라는 요구가 급격하게 커지고 있지만, 국내 금융사들은 글로벌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 사외이사는 여전히 남초(男超·남성인구가 여성보다 많은 것) 현상이 지배적이다.

사외이사는 커녕 임원도 없는 곳 수두룩

이데일리가 지난 3분기 기준으로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 금융회사 22개사 임원현황을 전수 전수조사한 결과, 전체 사외이사 106명 중에서 여성 이사는 총 9명(8.49%)에 불과했다. 특히 절반 이상인 14곳은 여성 사외이사가 한 명도 없었다.

여성임원(미등기)으로 범위를 넓혀도, 여성임원이 전혀 없는 금융사가 9곳이다. 전체 임원 중 여성 비율은 4.19%에 불과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국내 4대 금융지주사 중에서는 우리금융지주가 여성 사외이사를 두지 않았다. 우리금융에는 여성 임원이 아예 없다. 신한금융지주는 전체 10명의 사외이사 중 1명만이 여성이었고, 하나금융지주는 8명 중 1명만이 여성이었다.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여성 사외이사는 1명 있지만, 여성 임원은 없었다. 그나마 KB금융지주가 7명 중 2명의 여성 이사를 두어 비중이 가장 높았다.

IBK기업은행의 경우 국책은행임에도 불구하고 총 4명의 사외이사가 모두 남성으로 구성돼 있고, 15명의 미등기 임원 중 고작 1명만이 여성으로 선임된 상태다. BNK금융지주, DGB금융지주, JB금융지주 등 지방 지주사의 경우는 여성 사외이사는커녕 여성 임원을 두는 곳도 없었다.

보험사 상태는 더 심각했다. 대형사로 불리는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사외이사는 모두 남성으로 채워져 있다. 각각 60여명의 임원 중에서 여성 임원은 2~3명에 불과했다. 미래에셋생명과 동양생명의 경우 4명의 사외이사 중 1명씩의 여성 사외이사를 두고 있었다.

손해보험사 8곳 중에서는 현대해상 1곳 만이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DB손해보험, 한화손해보험, 흥국화재, 코리안리 등은 여성 사외이사는 물론 여성 임원도 없었다.

금융사들은 여성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고 항변한다. 사외이사는 보통 변호사, 교수, 기업의 대표이사 등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에서 여성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금융사들은 지분을 가진 곳에서 각자 원하는 인물을 사외이사로 추천하다 보니, 여성만을 위한 자리를 두긴 힘들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ESG 항목 중 가장 빠르고 쉽게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분야가 환경(E)이기 때문에, 이쪽에 몰두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지배구조 부분의 성적을 올리려면 여성 임원 비율을 높이거나 지분구조를 건드려야 하는데 인력 풀이 적다 보니 현실적으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자본시장 움직여 금융사 인식 바꿔야”

전문가들은 결국 글로벌 자금의 압박이 본격화되면 금융회사도 움직일 것으로 예상한다. 돈이 움직이면 투자가 필요한 금융사들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자 비율이 높은 신한금융과 KB금융이 ESG 경영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회사는 국내 금융사 중에서 유일하게 블룸버그가 선정한 성평등 지수 우수기업 리스트에 포함돼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기업을 압박해 이사진을 여성으로 교체한 사례는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지난 2016년 미국의 행동주의 해지펀드 ‘아이즈 캐피털’은 나스닥 상장사 보잉고(Boingo)에게 ‘남성 위주의 이사 구성을 비판하며, 여성 이사 임명을 비롯해 이사진 교체’를 요구했다. 아이즈는 공개 서신을 띄어 다른 주주들을 설득했고, 거부하던 보잉고도 결국엔 여성 이사 1명을 선임했다.

세계 3대 자산운용사인 SSGA는 전 세계 기업에 여성 임원의 수를 늘릴 것을 촉구하는 ‘두려움 없는 소녀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SSGA에 따르면 캠페인 시행 2년 만에 1227개 기업 중 329개가 여성 이사를 선임하거나 관련 계획을 수립했다. 지난 2018년 SSGA는 이사회 내 여성이사가 없는 전 세계 581개 기업의 이사 후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일본은 국민연금이 나서 자국 기업들의 여성 이사 선임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 연기금인 일본공적연금(GPIF)은 ESG에 여성(W)을 붙인 ‘WESG 투자론’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기업의 ‘성 다양성 지수’를 투자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일본 공적연금은 약 1500조원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연금이다. 일본 공적연금이 일본의 여성 친화 기업 투자 규모는 10조원이 넘는다.

‘여성 관리자가 많을 수록 기업의 성과가 좋다’는 실증 연구가 더해지면서 글로벌 자금의 여성을 강조하는 투자 기조는 한층 더 힘을 받는 분위기다. 미국 피터슨경제연구소는 지난 2016년 여성의 포용력과 여성 관리자·임원 비율이 30%인 회사가 여성 관리자·임원이 아예 없는 회사보다 6%포인트 수익을 더 올린다고 발표했다. 또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2015년 ‘강력한 여성 리더십’을 보유한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이 36.4% 높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김상경 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은 “일본공적연금이 자금을 움직이면서 일본 기업들의 여성 임원 비중이 7%대까지 올라왔다”면서 “국내 금융사들도 이제 변화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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