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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올해 예상치 못한 현직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성추행 의혹 사건이 잇따르면서 시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추악한 뒷모습이 드러난 이른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벌어진 지 불과 2년 만에 또다시 유사한 사건이 일어난 탓이다. 이 때문에 여성 단체를 중심으로 이제는 사건 실체를 밝혀 사회 지도층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권력형 성범죄’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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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지난 7월 9일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홀로 종로구 가회동 공관을 나섰다. 이후 경찰에 박 전 시장의 실종 신고가 접수됐고, 박 전 시장은 공관을 나선 지 14시간 만인 이튿날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대권 후보로도 거론되던 그의 갑작스러운 실종과 죽음은 많은 이들의 의문을 불러왔다.
박 전 시장은 지난 2011년 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두 차례 재선에 성공하며 최초의 3선 서울시장이었다. 국내 첫 직장 내 성희롱 소송인 1993년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등을 이끈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세상을 떠나며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며 “내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는 말만 남겼다.
피해자 측과 여성 단체들은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박 전 시장이 비서를 상대로 위력에 의한 성추행을 약 4년간 저질렀고, 비서가 인사 담당자를 포함해 20여명에게 고충을 호소했으나 묵인·회유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제기했다. 또 이들은 박 전 시장 사망으로 사실 관계가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을 대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해당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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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 4월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권력형 성범죄 사건’으로 스스로 시장직을 내려놓는 일도 있었다. 업무 시간에 해당 직원을 집무실로 불러 성추행했다는 내용이었다. 네 번째 도전 끝에 부산시장으로 당선된 오 전 시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본인 입으로 강제 추행 사실을 밝히면서 해당 사건은 드러났다.
당시 오 전 시장의 사퇴 시점이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 직후인 탓에 총선 전 사건을 은폐하고 무마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약 4개월 동안 수사한 경찰은 오 전 시장이 직접 밝힌 혐의 외에 다른 의혹에 대해선 구체적인 혐의 사실을 찾지 못했고, 검찰에 오 전 시장을 강제 추행 혐의로만 송치했다.
한편 최근 검찰은 오 전 시장이 지난 2018년 또 다른 성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가 파악했다. 이후 검찰은 지난 6월에 이어 오 전 시장에 대한 두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재차 기각했다. 오 전 시장은 변호인을 통해 해당 혐의를 시인하면서도 당시 상황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에 피해자를 보호해온 부산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한 전국 290개 여성인권단체로 구성된 ‘오거돈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법원은 권력형 성폭력 가해자인 오거돈을 일벌백계해 사회에 경종을 울려도 모자랄 판국에 또 풀어줬다”면서 “권력형 가해자 오거돈이 구속되고, 엄벌이 내려질 때까지 맞서 싸울 것”이라며 유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