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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친일 잔재 청산 문제가 다시 이슈다. 최근 충청남도 교육청은 친일 작곡가 및 작가가 만든 교가를 고치거나 바꾸는 것을 각 학교에 권고했다. 조사 결과 도내 713개 초·중·고교 중 31개 학교가 이흥렬·현제명·이원수 등 친일파가 작곡·작사한 교가를 채택하고 있었다. 충청남도 뿐만 아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26일 발표한 ‘학교 내 친일잔재 1차 조사결과’에 따르면 서울지역 초·중·고 중에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사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사용하는 곳이 113곳으로 확인됐다.
친일 잔재 청산 문제는 문화계에서도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한국 연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극작가 유치진의 친일 논란에 대해 문화계 내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지난 1월 중순 ‘안익태 케이스’(도서출판 삼인)를 출간한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최근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친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안익태 케이스’를 통해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1906~1965)의 친일 문제를 다시 거론하고 나섰다. 안익태의 친일 문제는 2006년 음악학자 송병욱이 안익태가 일본이 세운 괴뢰국 만주국 축전 음악회 실황을 지휘했다고 밝히면서 불거졌다. 이 교수는 ‘안익태 케이스’에서 안익태를 후원한 독일 일본 협회가 민간단체로 위장한 나치의 외곽 조직이었다며 안익태가 친일파를 넘어 ‘친나치 인사’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교수가 안익태의 친일 문제를 다시 끄집어낸 것은 그가 작곡한 애국가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가(國歌)의 자격이 있는지를 되묻기 위해서다. 이 교수는 “안익태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10여 년 밖에 되지 않았다”며 “다시 한 번 이야기가 될 만한 시기가 됐고 이제는 애국가에 대해서도 공적인 담론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집필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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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도 친일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한국 연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극작가 유치진(1905~1974)의 친일 행적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연극평론가인 김미도 서울과기대 교수는 “유치진의 제자들이 연극계를 주름잡아온 상황에서 그의 친일 문제를 노골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었다”며 “이제는 유치진뿐만 아니라 연극계에 남겨진 친일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공과 과를 구분해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다”라고 말했다.
유치진의 친일 문제는 지난해 불거진 극장 드라마센터의 공공성 논란에서 비롯됐다. 유치진이 1962년 개관한 드라마센터는 현재 서울예대(학교법인 동랑예술원) 소유로 2009년부터 서울시가 임대계약을 맺고 서울문화재단을 통해 연극 전용 극장인 ‘남산예술센터’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예대가 지난해 드라마센터의 임대계약을 오는 2020년까지 하겠다고 통보하면서 존폐 위기에 놓인 상황이다.
유치진에서 나아가 연극계의 친일 문제를 다루는 움직임도 함께 일고 있다. 남산예술센터는 유치진과 드라마센터의 문제를 다루는 연극 ‘드라마센타, 드라마/센타’(가제)를 오는 9월 올릴 예정이다. 유치진의 친일 문제를 다루는 책 ‘유치진과 드라마센터-친일과 냉전의 유산’(가제)도 출판사 연극과인간을 통해 올 봄 출간을 앞두고 있다. 한국연극학회는 올 하반기 중 친일 연극을 주제로 한 학술 심포지엄을 계획 중이다.
문화계는 이제라도 친일 문제를 제대로 기억하고 청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과거 청산이 완벽하게 실패한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며 “친일 문제는 과거의 상처이자 아직까지 제대로 치유되지 않은 기억에 대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또한 “과거의 잘못된 기억은 시간이 지난다고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정부도 애국가 등 친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적인 기준을 세워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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